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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님과 카스테라
2010-04-19

<시> 스크립터 이미랑

가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코스모스 같단다. <> 프로덕션 전, 이창동 감독님은 시도 때도 없이 웃는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언제 상경했냐고 묻는다. 내가 대입하면서라고 했더니 “서울말 배우는 수줍은 소녀 말투 언제 고칠 거냐”고 하신다. 9회차였다. 스크립트 페이퍼를 빤히 내려다본다. 내 목에 걸린 펜을 뺏어 공란에 그림을 그리신다. “스크립트의 뜻이 뭐냐? 넌 언제 기록할래?” 14회차였다. 모니터를 확인한 감독님이 배우에게 뛰어간다. 똥강아지처럼 따라다녔더니 감독님이 뒤돌아보신다. “스크립터가 뛸 일이 뭐가 있니?” 23회차였다(50회차 더 남았다). 모니터를 확인한 감독님이 두손으로 얼굴을 싸맨다. 한쪽 다리를 떨기 시작한다. 정리되었다는 듯 겨우 고개를 들면 옆구리에 붙어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다. 숨막히는 정적을 뚫는 한마디. “넌 왜 만날 웃고 있냐?” 36회차였다. … 아, 그만하자. 여기서 그만하자. 끝도 없다.

…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모니터 테이블 오른쪽 가장자리엔 한뼘 조금 넘는 공간이 있다. 감독님의 원두커피와 간식이 놓이는 자리. 스크립트 페이퍼는 회차가 더하도록 채워질 기미가 안 보였지만, 그 공간은 종류별로 과자와 음료로 늘 채워져 있었다. 한때 영화는 사람이 아니라 담배와 커피가 만드는 거라고 하셨다는 분이 담배를 끊으니 주전부리가 늘었다. 카스테라를 즐겨 드셨는데, 손님 한분이 천연 벌꿀로 만든 수제 카스테라를 사오셨다. 본능적으로 집어먹고 있는데 막역하게 지내던 남자애가 내 이름의 끝자를 따서 “어이구, 이 돼랑아” 한다. 주로 감독님이 먹으면서 맛보라고 나에게 한 조각씩 주던 게 좀 지나니 내가 먹으면서 감독님에게 맛이나 보라고 좀 떼어주는 형국을 보고 놀리는 거였다. 감독님이 뒤를 번쩍 돌아보셨다. 남자애를 노려보더니 “너 그 단어, 반경 50m 내에서 금지다. 아니, 이 현장에서… 아니다! 이 지구상에서 금지어다.” 마지막 촬영을 3일 앞둔 69회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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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미랑·사진 박명희 <시> 스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