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청 관계자는 “<식코> 같은 영화가 문제가 되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럼 문제가 안되는 영화는 뭘까?
제주도 사투리 중에 ‘맞주마씨’란 말이 있단다. 맞주마씀, 마자마씀으로도 표기된다. 제주도 출신인 <씨네21> 디자인팀의 강선미씨에게 확인한 결과, ‘맞주마씨’는 보통 윗사람의 말에 동의할 때 사용하는 말이라고 한다. 지난주, 제주도에서 이 말의 용례를 파악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예술영화전용관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제주씨네아일랜드(이하 씨네아일랜드)의 이야기다.
씨네아일랜드는 지난 2008년, 예술영화전용관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제주도청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제주도청은 공공자금을 집행하기로 했다. 사건의 발단은 제주도청이 이 자금을 씨네아일랜드가 아닌 김태환 제주도지사가 위원장으로 있는 제주영상위원회쪽에 집행하면서부터였다. 제주도는 제주영상위를 통해 어느 극장을 대관한 뒤, 다시 제주영상위를 통해 씨네아일랜드의 예술영화상영사업을 지원하는 형태를 만들었다. 이때 제주영상위가 씨네아일랜드와 지난 3월, 임대차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제시한 ‘임차인의 금지사항’이 문제가 됐다. 제9조 임차인의 금지사항 3항에 “제주특별자치도가 지향하는 정책에 부합되고 지역주민 정서와 미풍양속에 저촉되지 않는 프로그램 운영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조항을 삽입했기 때문이다. 당시 씨네아일랜드쪽은 이 조항을 삭제해줄 것을 요구했고, 제주도는 이후 3항의 문항을 4항으로 변경하면서 “지역사회와 주민정서에 반하지 않는 프로그램 운영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다소 완화된 표현으로 조항을 바꿨다. 그러나 “지역사회와 주민정서에 반하지 않는 것이라는 기준” 또한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씨네아일랜드는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이때 제주도청 관계자가 말했다. “이 조항은 단지 (제주도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반하는) <식코>처럼 문제가 되는 영화를 제재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리고 함께 있던 제주영상위 관계자가 맞장구를 쳤다. “맞주마씨!” 오주연 씨네아일랜드 사무국장은 이 사안에 대해 “예술영화를 왜곡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제주도 지역신문인 <한라일보>의 4월12일자 보도에 따르면, 제주도청 문화정책과 관계자는 “임대계약서 내용은 애초 영상위원회에서 만든 것으로 제주도청이 중재해 내용을 완화했다”면서 “사회비판적인 영화를 지속적으로 상영하면 극장을 찾게 될 청소년과 노인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그런 조항을 넣었다”고 말했다. 도대체 예술영화전용관이 미칠 수 있는 좋지 않는 영향이라는 게 뭘까. 백번 양보해 제주도청이 예술영화전용관의 개념을 잘 몰랐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화사업을 지원하면서 ‘돈 주니까, 우리 말을 들어라’라는 식의 태도는 상당히 심각해 보인다. 사실상 최근 영화계에서 불거진 몇몇 사건들이 모두 이런 태도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대관료 정도를 지원하는 사업을 두고 프로그래밍에 관여하는 제주도청이나 서울아트시네마 운영비의 30% 정도를 지원하고는 운영주체를 공모하려 했던 영진위나 ‘지원’이 ‘지원’인 줄 모르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해 몇몇 영화단체들이 촛불단체로 규정돼 단체사업지원을 받지 못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수면 위로 떠오른 쟁점을 해결하는 것과 별개로 ‘공적지원’의 올바른 개념을 탑재하는 노력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이번 사건에 대해 “단지 어떤 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의 선택권과 향유권 자체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적지원과 문화활동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기존에 구축된 문화예술적인 합의와 개념을 재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맞주마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