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도시2>를 보았다. 영화가 마음속으로 내리꽂힌 순간은 바로 송두율 선생이 정말 북한과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고개를 쳐들 때였다. 우리 안의 뿌리 깊은 레드 콤플렉스가 각성한 순간. 송두율 선생뿐 아니라 윤이상 선생도 마찬가지일 거다. 아무리 위대한 예술가라도 ‘간첩’이면 끝. 통영국제음악제는 아직도 윤이상 이름 석자를 내거는 문제로 시끌시끌하단다.
<랩소디 인 베를린>은 윤이상 선생을 향한 레드 콤플렉스를 우회하여, 디아스포라들의 애달픈 운명을 가지고 이야기 그물을 정성껏 짜내려간다. 이근호는 일본 여성 하나코와 함께 그녀의 첫사랑이자 음악가였던 재일 한국인 김상호가 자살한 이유를 추적하게 된다. 김상호는 북한에 갔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17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었다. 작가가 윤이상 선생의 “작품과 생애에 혹독히 빚졌으면서도 선생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밝힌 바, 김상호는 그 삶뿐만 아니라 동양적 전위 음악을 추구한 예술관도 윤이상 선생을 닮았다.
동시에 요한 힌터마이어라는 18세기 독일 작곡가이자 조선인의 후예가 남긴 이야기도 진행된다. 힌터마이어는 오르간에 바람 넣는 풀무꾼 신세였으나 천재적 재능의 소유자로, 음악가 아이블링거의 도움을 얻어 작곡을 시작한다. 이 둘의 음악 업적과 논쟁은 바흐를 닮았으며 천재 대 비천재의 설정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닮았으니 여기까진 특이사항이 없다. 그러나 힌터마이어는 디아스포라,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고향을 그리며 동양적 음악을 만들고자 했단다. “나라, 민족, 그런 것에 어쩔 수 없이 이끌리나 봐요…. 일본 사람과 사회가 겐타로(김상호)를 그렇게 만든 거지요.” 결국 김상호는 힌터마이어의 자서전을 찾기 위해 평양까지 갔다. 조선인의 후예이자 금지된 사랑을 앓았던 궤적마저 자신과 닮았으므로. 결국 그는 사랑을 희구했던 사람이자 뿌리 깊은 고민을 예술로 승화했던 예술가. 레드 콤플렉스가 잠시나마 걷히는 순간.
이야기는 후반부로 나아가며 김상호의 운명과 유대인 고문문제를 접합하는가 하면 조선인을 학살했던 일본인의 고백을 다루며, 거대한 역사 흐름과 국가 권력이 개인들의 삶을 바싹 조여 정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과정을 차분하게 짚어낸다. “그(김상호)가 서 있던 곳은, 어디서나 게토였다.” 디아스포라, 제국주의 그리고 비인간적 역사를 애도하는 예술을 소개해온 재일 조선인 서경식 선생이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탄탄한 짜임새, 따뜻하고 선한 시선이 반가운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