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올 문학상은 없다 싶었는데 하나 더 추가. 문학동네에서 <제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냈다. “한국 문단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젊은 감각”을 지닌 작가들의 단편이란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김중혁과 배명훈을 찾자. 대상을 받은 김중혁의 <1F/1B>는 상가건물 관리자라는 ‘소외’의 아이콘을 요리조리 굴리는 손맛이 백미다. 건물 관리자들이 비밀 지하벙커로 모여 외부 공격에 맞선다는 장르적 설정도 있고, 지하벙커가 ‘1F’와 ‘1B’ 사이에 존재하는 ‘/’(슬래시) 같은 공간이듯 관리자들 자신도 그런 존재라는 한국문학적 통찰도 있다. 진지한 투로 건네는 썰렁한 농담도. 건물관리자연합 회장이 펴낸 책을 보자. “우리는 손을 뻗어서 형광등의 열기에 맞서 싸운다. 우리는 깜빡이는 형광등보다 외로운 존재들이다.”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는 철학적 아이디어 덕분에 이 작품집과 제법 어울리는 본격SF다. 과학자 신수정이 자살한 뒤 ‘나’는 그녀가 남긴 “뭘 하는 제품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발명품을 분석한다. 데카르트와 중세철학 등 존재에 관한 논설을, 존재를 추출해낸 제품설명서로 산뜻하게 패러디한 대목이 즐겁다. 존재는 그저 존재할 뿐이고, 존재를 증명할 방법은 존재가 사라지는 것뿐이니, 인간도 그 발명품도 이 결론을 따를 뿐.
이런 게 한국문학이다 싶은 단편들도 흔하지 않은 인상이라 반갑다.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와 이장욱의 <변희봉>은 고전적이되 날렵하다. <저녁의 구애>에서 김은 은사가 임종 직전이라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김을 기다리는 것은 유예된 죽음, 지진에 대비해서 재난용 통조림을 파는 도시, 시신 없이 식장에 덩그러니 놓인 영정 사진. 이 부조리한 분위기가 김의 무뎌진 촉수를 일깨운다. 이장욱의 <변희봉>은, 세상 사람 아무도 변희봉 선생을 모른다는 설정을 가지고 인생 뜻대로 풀리지 않아도 묵묵히 제 길 가는 인간 군상을 쓰다듬는다. 연극이 좋아 무작정 연극하는 친구, 오르골 소리에 빠져 일본 간다는 친구의 아내. 롯데 자이언츠 팬이라면 3 대 1로 어이없이 져버린 롯데 경기에 공감하리라.
결국 ‘한국문학’이라는 자장 안에 있건 밖에 있건 장르 기법을 쓰건 안 쓰건 문학판은 언제나 신선한 피 같은 “젊은 감각”을 원한다는 얘기. 그런데 이 감각, 원래 책 펴보기 전에 기대하는 일순위 아니었나? 재미있되 그 목적만큼은 낯설지 않은 만찬 같은 단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