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다 읽었다. 가볍고 술술 읽히는 소품이다.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있지만 추리소설이라기엔 아쉽고, 으스스한 분위기는 있지만 공포소설이라기엔 부족하다. 그런데도 미간에 주름 잔뜩 잡고 두근거리면서 읽게 만든다. 책읽기가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면 이런 책들 때문이 아닐까.
‘바벨의 모임’이라는 수수께끼의 사교모임을 둘러싼 연작 소설인데, 사실 모임 자체가 사건의 중심에 서는 일은 없다. 상류계급의 영애들만 가입 가능한 문제의 독서모임 ‘바벨의 모임’의 멤버들이 각자 겪은 이상한 일이라는 편이 맞겠다. ‘마지막 한줄의 반전’이라지만 대개 짐작 가능하니 너무 크게 기대하지는 말 것. 책을 좋아하는 몽상가로 십대를 보낸 소녀라면 손톱을 마구 깨물며 부모에 대한 불만과 세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몸부림치던 성장기를 떠올리게 되는 대목들을 만나게 된다. 집사물 덕후라면 이 책에 각별한 애정을 느낄 듯. 소녀를 보필하는 소녀라니, 거참….
요즘 이런 작은 모임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연작 단편집을 심심찮게 보게 되는데 다 기본은 한다. 무겁고 두꺼운 책들 사이에서 숨을 고르듯 한권 읽고 넘어가기에 딱 좋다. 사쿠라바 가즈키의 <청년을 위한 독서클럽>(여자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빠져들 오묘한 분위기)과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미스터리의 색이 좀더 짙다)도 읽어보시길. 연작 미스터리계의 <유주얼 서스펙트>인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기본으로 마스터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