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한 이름이다. 장쩐이앤과 짜오샤오딩. 이 둘은 장이모 감독의 오랜 파트너다. 장쩐이앤 프로듀서는 1992년 <귀주이야기>를 시작으로 20여년 동안 장이모 감독의 모든 영화를 제작해왔다. 짜오샤오딩 촬영감독 역시 <영웅>(2002) 이후 장이모 감독 영화의 촬영을 도맡았다. 지난 3월25일, 이들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경기3D입체영상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장쩐이앤 프로듀서는 ‘2010년 중국 영화산업 동향’에 대한 주제로, 짜오샤오딩 촬영감독은 ‘중국영화와 VFX시장’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하기로 한 것. 세미나 하루 전날, 일산에서 이들을 만났다.
-지난해 중국 영화산업이 5년 연속 30% 성장을 달성했다. 또 개봉영화 중 17편이 1억위안 이상의 성적을 거뒀고, 스크린 수는 600개가 추가되면서 4500여개를 넘어섰다. =장쩐이앤: 2000년에 개봉한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이 중국 상업영화의 방향을 가늠하는 지표였다. 그전까지 중국영화는 예술영화는 지하영화로, 할리우드영화는 상업영화로 인식되었다. 사실 그때는 중국인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습관이나 취미가 없었다. 예술영화 역시 시장가치로서 한계가 있었고. 할리우드영화는 당시 중국 극장의 열악한 시설로 오늘처럼 극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 힘들었다. 동시에 해적판 VCD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이 극장이 아닌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한 것도 불법복제 CD 때문이다. 그런데 <와호장룡>을 비롯해 장이모 감독의 <영웅> 등 작품성과 상업성을 골고루 갖춘 블록버스터영화가 등장하면서 중국인들은 ‘아, 영화를 극장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또 홍콩 영화인이 대륙으로 몰려들고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중국 영화산업도 함께 발전했다.
-중국 영화계가 블록버스터 영화제작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장쩐이앤: 많은 인구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만큼 배우, 영화에 대한 취향도 다양하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공통 관심사인 스타가 출연하는 블록버스터영화를 제작할 수밖에 없다. 블록버스터영화에 이연걸, 성룡, 견자단, 양조위, 장만옥 같은 스타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있다. 스타를 캐스팅하면 투자가 촬영 전에 이루어지고 시장성이 보장되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동시에 흥행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 중국의 제작자, 투자자, 스탭들이 블록버스터영화에 목을 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중국 영화인들은 불법복제에 강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짜오샤오딩: 그렇다. 다만 희망이라면 80, 90년생 젊은 친구들이 극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친구들은 주말에 친구들 만나서 함께 커피 마시고 밥 먹다가 “우리 극장에 영화 보러 갈까” 하며 자연스럽게 극장으로 향한다. 한마디로‘신(新)생활’이 습관이 된 것이다. 덕분에 한해에 100편 정도 제작되던 중국영화가 지금은 400편 가까이 제작되고 있다.
-지난해 <중국영화신문>, 온라인 뉴스사이트‘차이나필름’ 등 중국 언론은 “이제 중국영화는 ‘포스트-블록버스터’(Post-Blockbuster) 시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일제히 말했다. 더이상 할리우드에 밀리지 않는 중국영화의 약진과 점점 제작비를 줄이고 있는 투자 환경, 이 두 가지 이유와 함께. =장쩐이앤: 그러나 포스트 블록버스터 시대는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시급한 건 중국 상업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다. 80, 90년대에 비해 지금은 국제적인 스타가 부족하고 이연걸, 성룡 등 구세대 스타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다. 사실 적은 제작비로 흥행에 성공한 <소피의 연애매뉴얼> 역시 장쯔이라는 국제적인 스타가 있었기에 (흥행이) 가능한 거였다. 앞으로 80, 90년대에 태어난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또 해외시장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 중국어라는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와 부족한 스타배우로 인해 쉽진 않을 거다. 그러나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블록버스터영화가 계속 제작되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현재 서극 감독이 극비리에 부산 후반작업센터 AZ웍스에서 신작 <적인걸>의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후반작업을 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한국의 인력이 더 우수할뿐더러 제작비 역시 저렴하다”고 말하더라. =짜오샤오딩: 분명 중국의 후반작업업체는 다른 나라에 비해 출발이 늦었다. 장이모 감독의 <영웅> <연인>을 만들 당시, 중국에는 CG를 소화할 만한 업체가 없어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 가서 작업했다. 최근 중국에 있는 후반작업 업체는 두 부류다. 광고 CG를 하다가 영화로 넘어온 경우와 외국의 후반작업회사가 합작식으로 중국 지사를 낸 경우다. 최근 국가에서도 후반작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투자를 하기 시작했는데, 국영제작사인 차이나필름의 ‘화룡’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큰 규모의 영화들은 주로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홍콩, 타이로 가서 후반작업을 한다. 최근 한국쪽 후반작업업체들의 실력이 좋다는 이야기가 중국에 알려지고 있더라. 나 역시 한국에서 작업할 생각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장이모 감독의 오랜 파트너다. 어떻게 만났나. =장쩐이앤: 1991년 서안영화사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는 감독님이 <붉은 수수밭>(1988), <대호미주표>(1989), <국두>(1990)를 찍을 때였다. 베이징으로 모셨는데, <귀주이야기>를 위한 새로운 팀을 구성해야 했다. 서로 이야기가 잘 통했던 내가 그의 조감독으로 합류했다. 원래 나는 무대미술 전공이었다. 이후 광고도 찍고 일을 계속 함께했다. 그리고 <인생>(1995)으로 프로듀서 입봉을 했다. 이후 20년 동안 함께했다. 장이모 감독이 올해 60살로 나보다 2살 더 많다. (웃음) =짜오샤오딩: 베이징전영학원을 졸업하고 주로 CF와 예술영화를 촬영했다. 당시 올림픽 개최 유치를 위한 홍보영상의 촬영을 맡으면서 장이모 감독을 만났다. 이후, 여러 CF를 함께 만들었다. 그는 영화뿐만 아니라 CF, 뮤지컬, 공연 등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이다. =장쩐이앤: <영웅> 촬영 전에 나한테 와서 그러더라. “내가 봐둔 촬영감독이 있는데 가서 데리고 와라.” 그래서 가서 (짜오샤오딩을) 데리고 왔지. (웃음)
-베이징전영학원 촬영전공 출신인데, 영화가 아닌 광고 일을 주로 한 것은 돈 때문인가. =짜오샤오딩: 영화작업도 많이 했다. 그런데 당시는 영화가 많이 제작되지 않던 때였으니까. 1년에 200편이 넘는 광고를 다 내가 찍었다. 대량 생산했다. (웃음)
-평소 역동적이고 선이 굵은 촬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강렬한 이미지를 선보여야 하는 광고의 영향인가. =짜오샤오딩: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감각적인 화면을 빨리 찍어야 하는 광고 촬영을 통해 기술적인 것을 몸으로 많이 익혔다. 이는 영화 촬영에 창의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된 것 같다.
-두 사람은 이제 장이모와 눈 감고도 작업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겠다. =장쩐이앤: 우리 둘을 포함해 다른 기술 스탭들 역시 장이모 감독과 처음부터 함께 작업해온 사람들이다. 다만 미술감독은 수시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현대극이냐 사극이냐에 따라 미술감독의 역량이 다르게 발휘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서로가 말을 안 해도 무엇을 원하는지 눈빛만 보고 알 정도다.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가 중요하다.
-장이모 감독 신작 역시 함께 준비하고 있나. =장쩐이앤: 나는 다른 영화 제작과 겹쳐 이번에는 함께 못한다. 짜오샤오딩 촬영감독만 함께 작업한다. 4월10일에 크랭크인할 예정인 장이모 감독의 신작은 <산수유나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랑 이야기로 인터넷에 연재됐던 작품이다. <집으로 가는 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생각하면 될 거다. 주연으로는 18~19살의 신인배우들이 출연하고 저예산영화다. 아직 말해줄 순 없지만 이 작품 다음 영화가 엄청나게 큰 프로젝트다. 그때 셋이 함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