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의 인천 차이나타운. 흐린 날씨와는 달리 아이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맑다. 선물가게 앞에서 호랑이 인형을 가지고 여자 친구들에게 얄궂은 장난을 치는 기태(이제훈), 좋아하는 보경이와 함께 있어 마냥 좋은 희준(박정민), 그리고 큰형처럼 분위기를 주도하는 동윤(서준영)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절친’이었다. 그러나 작은 균열이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세 친구는 알고 있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 세 친구가 행복한 순간을 즐기고 있는 이 풍경,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에서 뉴욕 브루클린 다리 앞을 행복하게 걸어가는 네 사내아이들을 떠오르게 한다.
지난 3월26일 인천역, 차이나타운, 월미도 선착장에서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3기의 일환으로 제작되는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의 보충촬영이 한창이었다. 세 공간의 촬영분은 영화에서 가장 밝은 장면이다. 인물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인 만큼 배우들이 감정에서 다 빠져나온 뒤에 찍으려는 것이 이번 보충촬영의 의도다. 촬영 다 끝났겠다, 하루 날 잡아서 논다는 생각으로 찍겠거니 했는데, 촬영하는 것을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걸어가는 단순한 동작을 카메라가 180도 가상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5분 이상 가까이서 따라가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들에게 긴 테이크는 분명 고역이었을 것. “평소는 이보다 더 심하다. 한 테이크에 10분 이상 갈 때도 있고, 같은 장면을 30번 이상 찍기도 했다.” 스크립터의 귀띔이다. 어떤 균열로 인해 누군가가 파멸하고, 이로 인해 관계가 깨지는 이 비극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분명 배우들의 생생하고 섬세한 연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나마 오늘은 놀면서 찍는 거다. 촬영할 때 배우들이 탈진해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찍는 내내 배우들에게 미안했다”는 게 윤성현 감독의 말이다.
<파수꾼>은 세명의 고등학생 친구들이 어떤 일을 겪으면서 한 친구가 자살에 이르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날 보충촬영을 마지막으로 후반작업에 돌입하고, 올해 안에 관객에게 첫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