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못하는 김 여사가 아니라 칼질 잘하는 심 여사라니 쫄깃하다. 쉰한살, 정육점 심 여사는 자식 먹여살리려고 흥신소 킬러가 되기로 결심한다. 미행하려면 안경 쓰고 무릎에 패치 몇장 붙여야 하는 우리네 엄마 같은 그녀가 냉혹한 킬러의 세계에 뛰어든다니! 놀랍게도 그녀는 흥신소 첫 미션, 전남편 재산 긁어먹는 찜질방 여주인을 야무지게 해치운다. 잠깐만. 정육점 경력이 아무리 길어도 그렇지, 금방 프로 킬러가 될 수 있어?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런 의심은 잠시 접을 만큼 설정이 재미나다는 것이다.
<심여사는 킬러>는 만화잡지 <팝툰>에 실린 작품으로 잡지 연재에 어울리는 구성을 갖추고 있다. 각 장에 심 여사와 주변인의 사연이 하나씩, 미니소설처럼 소개되는데 그들 이름이 제목이다. 심은옥, 박태상, 오신자…. 부모님 계모임에서 들어봄직한 이름들. 강지영 작가는 이들을 재래시장이나 유흥가 골목, 동네 찜질방에서 한번쯤은 마주칠 캐릭터로 감칠맛나게 그려낸다. 먼저 심은옥 여사, 평생 ‘민폐’였던 남편은 도박 빚을 남기고 자살하는 바람에 보험금마저 무용지물로 만들었단다. 전직 횟집 칼잡이이자 전설적인 킬러지만 함민복 시인을 좋아하는 흥신소 사장 박태상도 있고, 담배 가게 꾸리면서 사주 풀이 연습하다 얼결에 무당 된 오신자 여사도 있다. 어쩜, 작가님은 이런 얘기 어디서 다 모으셨는지요.
읽다보면 ‘서민’이라 불리는 이들의 세계가 머릿속에 지도로 펼쳐진다. 좁은 집구석에서 가족들끼리 등 맞대고 복작복작대는 수선스러운 세계 말이다. 물론 흥신소나 킬러 같은 음지의 세계를 해부하는 장도 있다. 부모에게 버려졌다 납치까지 당하고 자폐적 세계로 빠져든 소녀나 아들에게 살해당한 아버지 이야기 등. 그래도 전체적으로 경쾌한 시트콤 분위기를 놓치지는 않는다. 사실 “뜯어보면 너무나 순박하고 지나칠 정도로 평범한” 사람들이 사기도 치고 불륜도 저지르고 살인도 하는 법이니까. ‘먹고사니즘’이 판치는 이 세상이 ‘가장 보통의 존재’ 심 여사마저 험상궂은 세계로 내몬 건 아닌지. 워낙 밀도 높은 사연이 계속 이어지니 후반부에는 사운드 빵빵한 스피커 바로 앞에서 음악 듣는 듯 피로감이 느껴지고, 인물 심리가 어색하게 흐르는 부분도 종종 있다. 그러나 “32년째 짐승의 배를 갈라온 마장동 임씨의 새김칼은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이다” 같은 날렵한 문장들이 아쉬움을 충분히 밀어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