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영의 비평집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에 실린 두편의 우정어린 발문에서 정성일은 ‘이상하다’라고 말하는 허문영의 질문으로 시작하여 허문영 비평의 욕망을 새롭게 밝히는 정치한 메타비평을 성취했고(발문1), 김혜리는 느리게 ‘말한다’는 허문영의 습관으로 시작하여 그의 몸의 기질과 글의 관계에 관하여 우아하게 중계했다(발문2). 나는 ‘대면한다’고 쓰는 허문영의 비평적 생존의 의지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이 책의 감상평을 짧게나마 대신하려고 한다. 그가 이 말을 얼마나 자주 쓰는지 의식해보지 않았으나 점점 더 허문영의 글쓰기에서 중요해지는 건 그것이며 내게는 들을 때마다 가장 울림이 깊은 그의 표현 중 하나다.
허문영은 꾸준하게 한국영화의 무언가를 만나길 청해왔다(1부, 한국영화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 그 때 그는 공고한 용어에 의탁하지 않아도 혜안의 조감도가 가능하다는 걸 매번 입증함으로써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동시에 그가 만나기를 가장 즐겨했던 것은 그가 사랑하는 국내외의 감독들이다(2부, 우리 시대의 감독들/ 3부, 우리 시대의 감독들2). 한번에 종지부를 찍기는커녕 스스로 요청하고 또 요청하며 동일한 감독에 관한 동심원의 사유를 넓혀나갈 때 허문영의 덕분으로 그 감독들의 위대함이 우리에게도 보인다. 그는 걸작이나 수작뿐 아니라 평작이나 괴작이라 할 만한 몇몇 영화들까지도 단평에 포함시키는데, 그때 그는 판관이 아니라 그 영화의 질문을 알아주고 영화적 생명을 느끼는 애틋한 감상자다(4부, 질문하는 영화들/ 5부, 빛과 소리의 움직임).
“어떤 추상도 어떤 절대성도 세속적 타자의 물리적 현존 앞에서 항상 질문에 부칠 것. 좋은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세속적인 영화일 것이며, 사이드가 말한 ‘세속적 비평’은 겸양이 아니라 비평의 올바른 자리에 관한 표현이 될 것이다.”(책머리에) 허문영은 그렇게 쓰고 있다. 그러니 세속이 그의 대면의 오래된 기원이자 드넓은 평원이다. 이 책을 위해 새롭게 쓰인 글(서문, 랜드스케이프를 잃고)에서 허문영은 어릴 적 운명적으로 서부극을 각인한 뒤 상상의 서부 사나이로 성장하면서 느꼈던 그 랜드스케이프의 상실감과 재귀환을 지금의 자리에서 반추한다. 감동적인 것은 그가 거리를 강조하며 영화사를 순례하는 순간들이다. 타자와의 거리, 물리적 거리, 초월적 거리, 시간적 거리. 허문영에게 영화사란 그 대면하는 거리들의 역사다.
그 어느 날 그의 한편의 글을 읽은 다음 내가 충동적으로 보낸 애독의 품평에 관하여 그가 보내온 답장에는 잊지 못할 말이 있었다. “지독하게 사랑하든가, 아니면 곧 소진되겠지. 그래도 살아 있는 게 좋다. 추한 짓도 하고 멍청한 말도 하고 그렇게라도 살아 있는 게 좋다. 그런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는 태도를 영화나 글이 품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비밀스럽고 사적이며 참으로 일반적인 의미에서조차 세속적이기 이를 데 없는 표현이 그의 세속적 비평으로서의 쾌락과 생존을 이미 암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더 실감하게 됐다. 기억해보니 그 말에 힘을 얻어 나도 또 한 계절을 보냈다.
허문영의 글쓰기는 운명적으로 영웅적 대의의 글쓰기가 될 수 없다. 세속의 글쓰기는 그것들을 하지 않는다. 세속이란, 공동체 안에 있는데도 합일되지 않고 분열되어서 부활하는 사건들일 것이며 그 때문에 일괄 포섭되지 않는 것이며 결국은 자주 잡스럽게 실패할지라도 영웅이 아닌 우리에게는 늘 생사의 문제다. 허문영의 놀라운 점은 이걸 요란하지 않고 고요하게 받아들이고 들여다본다는 데 있다. 그러니 비유컨대 허문영이 서부의 사나이라 해도 나는 이 사나이의 비평을 읽을 때마다 권총에 멋지게 손을 얹고 상대방을 주눅 들게 하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마을 입구의 술집 앞에 놓인 흔들의자에 조금 피곤하다는 듯 무심하게 걸터앉아 저 멀리 평원에 무심코 깊은 시선을 던지는 그런 서부 사나이를 상상한다. 영화를 뒤따르는 비평의 행위가 때로는 실패와 몰락을 예정한다 해도, 아니 실은 기어이 거기까지 가는 것이 영화에 대한 영화비평의 운명이라면, 허문영은 대면하기를 멈추지 않을 생각인 것 같다. 그가 말하는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의 생은 그렇게 연장될 것이다. 한권의 영화 비평집이 그런 세속의 날들을 살아갈 수 있게 한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라고 아마 허문영도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