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했다. ‘못난이’ 공효진이 예뻐졌다고. 가뜩이나 긴 기럭지는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보헤미안 그런지 스타일의 의상 속에서 빛났고, 내추럴 메이크업에 발그레 홍조를 띤 얼굴은 청순함을 더해줬다. 주방에서 ‘연애도 하고 일도 하는’ 여자가 아니라 주방에서 ‘일하는 여자가 연애도 하는’ 서유경은 또래 여자들을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기준이 됐다. 서유경이 셰프에게 혼날 때 같이 분개하고, 그녀가 셰프에게 안구 키스를 받을 때 같이 떨려 했던 이들에게 이제 서유경은 잊지 못할 캐릭터로 남았다. “서유경요? 딱 저예요. 저랑 참 많이 닮았어요”라며 기존의 자신을 모두 배반하는 발언과 함께 서유경을 연기한 배우 공효진. 10년차 배우 공효진의 서유경 예찬론을 그녀의 입을 통해 전달한다.
잠도 못 자고 촬영했다고 들었어요. 매니저 왈, 며칠이나 집에도 못 가고 찜질방에서 잠깐 눈 붙이다 나오면서 한 촬영은 처음이었다고 하던데요. 가까스로 갖는 휴식인데 인터뷰로 괴롭히네요. “<미쓰 홍당무> 때도 힘들었는데, 이번엔 딱 그 두배만큼 힘들었어요. 한신을 세상에! 그 좁은 주방에서 6시간씩 찍었어요. 드라마 한신 보통 한 시간 촬영하면 끝나잖아요. 그래도 방송 끝나면서 ‘이제 월요일엔 뭐하냐’고 책임지라는 친구들이 많으니, 지금 서유경이라는 아이가 저한테 남아 있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겠더라고요.” 서유경의 매력, 정말 대단했죠. ‘20대 여성의 셰프 도전기!’라고 하면 ‘김삼순’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자아를 성취하는 모범적인 여성. 그런데 서유경은 안 그래요. 힘들면 힘들다고 찡찡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잘 웃고, 울기도 잘 울고. 참 특이해요. “대표적인 신이 냉동실에 갇혀 있던 신이잖아요. 다들 끝까지 버텨서 병원에 실려가고 두 남자의 관심을 받을 줄 알았는데…. (웃음) 얜 못 참고 나와서 셰프한테 혼나고. 사람들 쑥덕거려도 열심히 일하고.” 그 순간 <파스타>가 드라마와 멀어졌어요. 아, 이거 드라마가 아니라, 어쩜 내 주변의 일이겠구나. 서유경도 정말 셰프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내 또래의 여자겠구나.
“너무 긍정적인 아이예요. 뒤끝도 없고 입도 무겁고. 이런 여자친구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싸울 일이 없잖아요. 오죽하면 선균 오빤 서유경 같은 여자가 어딨냐고 하던데요.” 그런 서유경을 연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좋아서 웃음을 못 참는 장면, 셰프한테 화내는 장면, 그런 거 NG컷도 버리지 않고 다 모아서 쓴 것같이 자연스럽더라고요. ‘연기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오던데요. “<해피타임>에서 출연료 받냐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제가 워낙 웃음이 많아서요. 그래도 전 웃다가 갑자기 그걸 NG로 안 가게 무마할 수 있어요.” 역시 10년 경력의 연기 노하우가 빛을 발했군요. “노하우는 무슨 노하우요. 갑자기 정신 차리는 거죠. 아, 나 지금 연기 중이지. (웃음) 사실 부러 어색함을 끌고 갔던 부분도 많았어요. 감독님이 우릴 믿고 끝까지 그걸 방송에 내보내주셨으니 가능했지만. 드라마가 너무 상투적인 면이 많잖아요. 기쁘면 기쁘고 슬프면 슬프고. 자로 잰 듯한 감정만 담으려 하니까요. 그런 게 시청자를 위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전 드라마도 좀 새로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못난이’ 캐릭터만 10년, 이젠 예뻐지고 싶어요
물론, 효진씨 캐릭터도 더불어 새로워지고 싶었겠고요. 사실 ‘못난이’ 캐릭터만 도맡아 했었는데, 이번엔 무작정 밝고 예뻐요. “감독님한테 처음부터 말했어요. 이번만큼은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엽다, 그런 소리 듣는 여자였으면 한다고. 평범하고 여리고 힘들면 쓰러지는 캐릭터요. 제가 워낙 집안에 우환있는 캐릭터만 해왔잖아요. (웃음) 오죽하면 에이즈 걸린 딸도 있었으니까요.” 그게 오히려 공효진이라는 배우의 매력 아니었나요. 주류와는 거리가 먼 반항적인 이미지. 강하고 개성있는 캐릭터, 다른 배우들은 가질 수 없는 공효진만의 무엇. 확실히 차별화되잖아요. “저 역시 그 모습을 즐기기도 했어요. 이건 흔한 색깔이 아니라 나만 할 수 있는 거니까란 자신감도 있었죠. 그런데 연기 10년 되면서 자책이 들었어요. 항상 들어오는 비슷한 캐릭터들을 보면서 내가 가진 캐릭터가, 나란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이렇구나. 나한텐 여기까지가 한계야 싶더라고요. 연기는 잘한다고 칭찬해주면서도 왜 다른 배역은 안 주는 걸까 좌절도 컸어요. 바꿔야 할 절대적인 타이밍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대중적인 인기, 인지도 이런 것에 대한 목마름을 무시할 수 없었나 봐요. “그게 딜레마예요. 500만 넘는 관객 드는 영화 찍고 인지도도 높이고 CF 찍는 그 길이 맞는 건지, 그런 배우들 보면 부럽기도 하고, 아님 비주류지만 업계에서 평가받는 게 맞는 건지. 확고한 주관이 있으면 좋겠지만, 정답은 매번 어려워요. 전 이제 빅스타가 될 나이도 지났고 이제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딜까 이런 고민이 남는 거죠. 특히 지난해에 <미쓰 홍당무>로 연기에 대한 좋은 평가를 얻으면서 이런 마음이 더 강해졌어요. 서른이 되기 전에 그런 큰 상을 받으면 정말 배우로서의 희열은 절정일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또 그렇지 않다는 데서 오는 자괴감도 생기더라고요.”
보세요. 저 해냈죠?
밝고 맑은 서유경 캐릭터 뒤에 그런 고민들이 도사리고 있었군요. 어쨌든 이번 역은 성공적이었어요. 심지어 뷰티 CF도 찍었다고 들었어요. 여배우에게 뷰티 CF만큼 대중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증거도 없잖아요. “확실한 건 <파스타>가 제 또래 여자들이 지금까지 제가 했던 드라마 중 가장 사랑했던 드라마라는 거였어요. 해외 출장 가서도 봤다고 했으니까요.” 이번이 성공이더라도 다음 선택은 여전히 고민인 직업이잖아요. “다행히 벌써 결정해놔서 지금은 홀가분해요. 영화 찍으러 산골로 가요.” 다음 스텝이 뭐가 되든지, <파스타>가 보험이 된 건 맞겠어요. 못난이 캐릭터만 하던 공효진도 이런 대중적이고 예쁜 연기도 잘할 수 있다는 걸 훌륭하게 보여줬으니까요. “맞아요~. 정말요. 종방 파티 때, 처음 서유경 한다고 했을 때 ‘지금까지 중 기대감이 제일 낮은 캐릭터인 거 아시죠’ 했던 기자들한테 ‘보세요. 저 해냈죠’ 이렇게 으쓱하게 되더라고요. 저 혼자가 한 게 아니라 좋은 분들과 만났고 운도 좋았지만, 역시 그래서 배우라는 직업은 희망이 있는 끊을 수 없는 직업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