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이 소설 속 젊은이들더러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지 마, 라고 말한다면 꼰대 소리를 들을까? 어쩔 수 없다. 책을 보는 내내 한숨이 나왔단 말이다. 이 반짝이는 청춘들이 왜 그토록 밋밋하게 사는가. 주인공 ‘나’, 성실하게 편의점 알바 뛰는 모습이 예쁘기만 하다. 또 ‘나’의 지인들, 평균 이상으로 멋지다. 동료 J는 마르고 키가 크고 피부가 희어 뮤지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청년으로, 특별히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어 몇년간 알바를 하며 자유로이 살아왔단다. 또 J가 짝사랑하는 카페 알바, 별칭 물고기는 흉터를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길고양이와 낡은 책을 좋아하며 거리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을 줄 아는 아가씨다. 패션잡지 빈티지 의상 모델이 떠오르는 모습이다.
콤플렉스 없이 어여쁜 청춘, 상큼하다. 늘어지지 않는 산뜻한 문장들도 한몫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 단체로 무기력증에 빠진 모양이다. 꿈도 없고 야심도 없다. 사회질서에 편입되기 싫어하건만 바깥으로 탈주하고픈 강력한 열망은 엿보이지 않는다. 나가봐야 별게 없다는 걸 처음부터 안다는 듯. 선배 M, 그 어떤 단체에도 섞이지 않고 싶다던 그가 어느 날 반듯한 양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회사 인턴이 되어 밤에는 영어회화 학원을 다닌다나. “절대로 그렇게는 못 살 것 같다고 생각하지. 근데 그렇게 살다보면… 익숙해지는 거야.” 또 평범함을 거부하는 J와 물고기가 꿈꾸는 도피란, 산속 절 생활과 세계여행이 전부. 하다못해 연애조차 이들의 세계에서는 튕겨난다. 사랑 따위 지나치게 끈적거리니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어른스러운 ‘척’ 시니시즘일까 아니면 21세기의 곤궁한 청춘 풍속도일까.
답은 쉽다. 가게 사장은 회사를 다니다, 편의점이 “늘 시원했고, 대부분은 평화로웠고, 거의 모든 게 있어서” 업계로 뛰어들었단다. 그러나 편의점도 늘 때려치우고 싶단다. 편의점, 마음을 뒤흔드는 열정과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 아주 얇고 뒤끝없는 관계만이 성립하는 세계. ‘나’는 바로 그 세계 속에서 청춘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87년생 작가의 데뷔작, 이 무기력증이 오늘날의 20대에 나타나는 하나의 징후라면 어쩔 수 없겠다. 또 급작스레 마무리되어 다소 작위적인 결말도. 탈주할 구석이 없다는데, 어쩌겠나. 하지만 무기력한 청춘에게도, 그들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공평하게 허락된 쾌락이 있나니 “비오는 날은 담배 맛이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