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혹은 나뭇잎 한장. 장편소설(掌篇小說)이나 엽편소설(葉片小說)이라고 불리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콩트 모음집이다. 작은 판형에 290여쪽, 그런데 68편이나 실려 있는 건 그래서다. 이야기 하나가 두세 페이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설국>으로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도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의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책이다. 그가 젊은 날에 (이십대였던 1921년부터 1935년 사이) 쓴 이야기들이라 <설국>과 <잠자는 미녀> 같은 작품들에 이르는 단초가 되는 ‘발상’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 여자의 몸, 어린 여자의 몸, 생명, 삶, 죽음, 희생을 비롯한 죽음과 맞닿는 탐미주의적인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이야기도 있고, 예상외로 쿨한 연애담도 있고, 환상담도 꽤 있다.
이야기 내용 자체에 집중해 호불호를 가르는 일도 의미있겠으나, 그보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있다. “많은 작가들이 젊은 시절에 시를 쓰지만, 나는 시 대신 손바닥 소설을 썼다. 이제 와서 보건대 이 책을 ‘나의 표본실’이라 하기에 부족함은 있지만, 젊은 날의 시정신은 꽤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운문과 산문의 경계에서 언어를 단련한 흔적이 흥미롭다. 고요한 호수에 파문이 일 듯 첫 문장에서 시작된 여운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도 즐겁다. “그녀가 싫어 도망친 남편에게서 편지가 왔다.” “사실 그의 어머니는 눈치가 둔하다.” “노인과 젊은 처녀가 걷고 있었다.” “요즘 언니는 동생의 기모노를 자주 입는다.” “눈(雪)이 반사되어 환해진 젖빛 유리문에 장식 소나무 그림자가 어렸다.” “여기서 말하는 장님이란, 눈이 안 보이는 걸 의미하지 않아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