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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을 자처하고 나선 두 남자 <예스맨 프로젝트>
이화정 2010-03-24

synopsis 영국 <BBC>는 굴지의 다국적 기업 다우가 20년 전 인도 보팔에서 일어난 대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120억달러 규모의 보상금을 약속하는 인터뷰를 생방송으로 보도했다. 믿기지 않은 소식은 바로 해프닝이 됐다. 사실 인터뷰에 응한 대변인은 다우의 진짜 대변인이 아니라, 국제적 악동으로 이름을 얻은 ‘예스맨’ 앤디와 마이크였다. 자본주의 사회의 허를 찌르는 이들의 거짓말은 정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느닷없이 출몰한다.

유력한 조직 혹은 사회지도층 인사의 대변인을 사칭해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 그들이 하지 않을 일을 대신 발표하고 다니는 이들. 말도 안되지만, 시민단체 ‘예스맨’은 실제 존재하는 단체다. 1993년 바비 인형의 성차별 해방 운동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다우사의 인도 보팔 참사 120억달러 보상 약속을 했으며, 군수산업으로 한몫 단단히 챙기는 할리버튼사를 위해 최첨단 구호 장비를 개발해 발표하고, 화석연료 남용에 지대한 공을 세운 엑슨사를 대신해 인간의 사체를 원료로 하는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했다. 창고나 다름없는 밀워키의 사무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이지만 이 거짓말에 다들 잘도 속았다.

걸리면 소송감임에도 불구하고 두 남자가 이른바 악동 행세를 하고 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누구나 당연히 생각하고 있는 거대 공룡, 시장경제의 허점을 한번 되짚어보자는 거다. 물론 이 거짓말은 실현될 리 없고, 거짓임이 밝혀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러니 예스맨의 ‘악행’에 대해 언론은 보란 듯 비난한다. 당신들의 선의를 가장한 거짓말이 피해자들에게는 희망을 줬다 뺏는 독이 될 수 있다고. 그러나 보팔을 대상으로 한 거짓 소동극을 벌인 뒤 찾아간 그곳 주민들은 두 남자의 거짓말이 지옥 같은 현실에 한 줄기 희망을 줬다고 되레 그들에게 고마워한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누가 보팔을 기억이나 했겠느냐고.

기업과 도덕성은 함께할 수 없다는 차가운 시장경제 논리 속에서 결국 예스맨의 기능은 한줄의 희망뉴스다. 희망이 쉽게 실현되는 건 요원하겠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품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이 거짓 소동극을 지지하는 자와 비난하는 자가 둘로 나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일단 다른 건 몰라도 두 남자의 장난질에 언론과 대기업이 홀라당 속아 넘어가는 걸 보고 있으면 속이 다 시원하다. 우리 모두를 대신해 홍길동을 자처하고 나선 두 남자에게 앞으로도 거짓말 잘할 수 있게 지원금이라도 보내주고 싶다. 이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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