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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프로듀서들은 어디로 갔나

<위대한 앰버슨가>

지난해 내가 본 한국영화 중 10여편은 자신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소설이었다면 읽다가 중간에 “이 책의 편집자는 뭘 한 거야?”라고 스스로 묻고 말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도대체 제작자는 뭘 하는 거야?” 하고 물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최근 읽고 있는 스티븐 킹의 책 <유혹하는 글쓰기>는 자전적 이야기, 주장, 충고와 웃긴 일화를 섞어 놓은 재미있는 책이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은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상상력, 자기 규율, 창조성과 고된 작업 등 예술 작품을 만드는 어려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모든 종류의 예술 작업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특히 그가 자신의 편집자에 대해 짧게 얘기한 흥미로운 부분에서 내 생각은 영화 작업에 대한 것으로 옮겨갔다.,

스티븐 킹의 말을 인용하자면 “편집자가 언제나 옳다”. 책을 써서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인 만큼 책을 쓰는 일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처할 수 있는 작가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가 쓴 글을 놓고 출판사 편집자가 다른 식으로 바꾸라고 제안할 때 “베스트셀러 작가인 내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하는가?”라고 되물은들 누가 그를 비난하겠는가? 그러나 대신 그는 작가들이 편집자의 충고를 듣는 편이 항상 더 낫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글을 쓰는 것은 인간의 일이고 편집은 신의 작업이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상업작가만이 아니라 존경받는 문학작가인 T. S. 엘리엇과 레이먼드 카버 역시 강하고 (때로는 지배적인) 적극적인 편집자의 손 아래서 그들의 최고작을 만들어낸 사실 역시 지적돼야 할 것이다.

영화산업에서 문학작품 편집자에 맞먹는 사람은 감독이 찍은 숏들을 붙이는 것을 돕는 편집기사가 아니라 제작자다.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제작자가 시나리오나 최종 편집본을 바꿀 것을 제안하거나 고집하지 않는 한 감독은 혼자 일한다. 다른 나라 영화산업들에 비해 한국영화산업에서 감독들은 큰 권력을 갖고 있다. 할리우드나 (알다시피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에서는 제작자가 영화의 상영시간을 줄이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다. 제작자들의 힘이 약해서 한국영화의 전반적인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겠지만,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문제라 생각한다. 스티븐 킹처럼 한국 감독들도 좋은 편집자를 쓸 수 있었다.

영화사를 보면 유명한 그 반대의 경우가 즐비하다. 능력없는 제작자가 위대한 영화를 망치는 경우 말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RKO가 잘라내기 전의 오슨 웰스의 <위대한 앰버슨가> 최초 감독판을 너무나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지난 20세기에 한국에서는 정부의 검열이 이런 문제의 근원이었기에 감독들이 가능한 한 최대한의 통제력을 가지려 하는 걸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실은, 좋은 영화는 좋은 제작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하는 일은 너무 피곤하고 소모적이기에 대부분의 감독들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 객관적이 되기 어렵다. 유능하고 힘이 실린 다른 의견이 필요한데, 내가 생각하기에 똑똑한 감독이라면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많은 변화들이 지난 십년간 한국영화계에 일어났다. 그러나 이 발전의 와중에 별로 언급되지 않은 것은, 제작자들이 창조적 통제 면에서 감독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게 된 변화상이다. 작가 이론과 창조적 과정에 대한 낭만적 생각들로만 보면 이런 일은 꽤 긍정적인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삶과 예술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지난해 내가 본 한국영화 중 10여편은 자신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감독의 창조적인 비전을 타협해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반대의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영화들은 초점이 없고, 너무 길고, 제대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응집력이 떨어졌다. 만약 이것이 소설이었다면 읽다가 중간에 “이 책의 편집자는 뭘 한 거야?”라고 스스로 묻고 말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도대체 제작자는 뭘 하는 거야?” 하고 물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번역 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