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뒤에 들은 말들 가운데 귀에 박힌 건 “현 정권의 어느 인사가 국제영화제 위원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소문은 정녕 소문일 뿐일까, 추측은 정말 추측일 뿐일까. 걱정이다. 요즘 들어 ‘정치’를 달고 나온 소문들이 소문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지난 3월17일 광화문 씨네큐브, 후배인 김성훈 기자가 조희문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에게 물었다. “이번 토론회가 갑작스럽게 열린 배경은 무엇인가? 정치적인 배경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 조희문 위원장의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씨네21>은 정말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이어 그는 “정치적 배경? 그런 거 없다. 그냥 우리 모두 잘해보자는 의미에서 연 거다. 더이상 묻지 말라. 노코멘트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열린 ‘국제영화제 발전방안 토론회’와 관련한 짧은 대화였다. 하지만 후배와 함께 토론회를 관전한 나는 이 토론회에서 “잘해보자는 의미”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발전적인 목적을 공유하는 토론회였다면, 좀더 면밀한 준비하에 진행됐을 것이다. 그 목적을 토론자가 공유했다면 그들도 좀더 설득력있는 근거와 논리로 무장해 토론회에 참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는 토론자가 토론문을 준비할 충분한 여유를 주지 않고 열렸고, 그 때문인지 몇몇 참석자들의 발언은 실소를 자아냈다. 발제에 나선 정헌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현재 국제영화제가 프로그램 수급을 위해 들이는 비용이 과다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칸영화제처럼 외국 영화제의 경우 상영료를 지불하지 않거나, 오히려 참가비용을 받는다”고 말했다. 전통이 깊은 외국의 국제영화제와 국내의 국제영화제를 비교한 것은 이대현 영진위 위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처럼 부분 경쟁을 통해 몇몇 독립영화감독이나 예술영화 감독을 발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국 영화제처럼)권위있는 경쟁영화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들은 정말 이런 비교가 설득력있다고 생각한 걸까? 칸영화제는 올해로 63주년을 맞는다. 베니스영화제는 66주년이고, 지난 2월에 열린 베를린영화제는 올해가 환갑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부산영화제는 올해가 15주년이다. 그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방식은 이제 4년차인 나에게 “넌 왜 로저 에버트나 피터 트래버스만큼 쓰지 못하냐”고 비난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개인적으로 이날 토론회의 압권으로 꼽은 건, 송낙원 건국대학교 영화과 교수의 발언이었다. “국제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시효가 지났다. 시네마테크가 여러 예술영화를 상영하고 있으며(그래서 중복되는 기능이고), 아니면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다.” 백번 양보한다고 해도 영화과 교수로서 ‘인터넷’을 운운하는 발언은 삼가야 했을 것이다.
토론회를 지켜본 이혜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영화제에서 예산은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이렇게 준비없이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해서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제영화제 관계자는 “도대체 왜 갑자기 영진위가 이런 자리를 마련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관계자는 “이 토론회를 보이는 그대로의 토론회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라며 기획배경을 의심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년도 예산안 마련을 위해 연 자리가 아니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날 토론회를 관전한 이들은 주로 ‘정치적인 배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토론회 뒤에 들은 여러 말들 가운데 귀에 박힌 건 “현 정권의 어느 인사가 국제영화제 위원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주변에 흘린 것 같지만,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토론회 역시 그런 자리경쟁 차원에서 성급히 벌이려다 논점을 잘못 찾은 것 아니겠나.” 소문은 정녕 소문일 뿐일까, 추측은 정말 추측일 뿐일까. 걱정이다. 요즘 들어 ‘정치’를 달고 나온 소문들이 소문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