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 레저의 마지막 작품을 <다크 나이트>로 알고 있다면, 그건 틀렸다. 팀 버튼 감독과 사진가 팀 워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협업한 듯한 공상과 상상과 몽상의 영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히스 레저가 채 끝내지 못한 그의 유작이다.
아무도 이야기 따위에는 관심없는 시절에 이야기보따리로 장사를 하려는 파르나서스 박사에게는 비밀이 있다. 악마에게 젊음을 얻는 대가로 딸(릴리 콜)의 열 여섯번째 생일에 그녀의 목숨을 내놓는 모종의 거래를 한 것. 모든 거래가 그렇듯 여기에도 문제를 풀 실마리는 있고, 희대의 사기꾼 토니(히스 레저)가 그 열쇠를 쥐고 있다.
흰색 스트라이프 스리피스 슈트에 하얀 구두를 신고 다리 밑에 목맨 채 달려 있던 토니는 상상극장 단원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구태여 도움이 없어도 그는 죽을 목숨은 아니었다. 사기를 밥 먹듯 치다 보니 쫓길 일도 많은 토니에게는 작은 피리가 하나 있는데, 분노의 무리들이 그를 목매달 때 얼른 그걸 삼키면 그 틈으로 숨을 쉴 수 있는, 이른바 비장의 수단이다. 속사정이야 어쨌건 목숨을 구해준 보답으로, 그는 쓰러져가는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을 번듯하게 부활시킨다. 우울한 놀이공원에서 쇼핑몰로 자리를 옮긴 뒤 상상극장에는 프라다와 페라가모 봉투를 들고 여우털 목도리를 휘감은 여자들이 줄을 선다. 그녀들은 처음엔 새부리 가면을 쓰고 에스콧 타이를 맨, 허우대 멀쩡하고 언변 좋은 토니에게 반해서 따라왔다가 결국 상상극장 거울 뒷면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모든 게 잘되어가는 듯 보였지만, 결국 토니의 사기는 만천하에 공개되고 그는 다시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처지가 된다. 그에게는 물론 피리가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힌트를 주자면 ‘피리로 흥한 자, 피리로 망한다’.
감독 테리 길리엄은 히스 레저가 맡은 역할에 주드 로, 콜린 파렐, 조니 뎁까지 동원해서 남은 이야기를 부랴부랴 엮었지만, 결과는 ‘히스 레저 없는 히스 레저 영화’ 정도랄까. 이 영화의 뜻밖의 즐거움은 히스 레저를 대신한 삼총사가 아니다. 미스터 닉 역할로 등장한 톰 웨이츠! 검정 보울러 햇을 쓰고 파이프 담배를 연방 피워대며 구름 위를 걸어다니는 생뚱맞은 괴짜 노인 역을 그보다 더 잘할 사람은 우주에 없다. 참, 안톤과 파르나서스 박사가 왠지 익숙하다면? <보이A>와 <사운드 오브 뮤직>을 떠올려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