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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한 조난신호 <도와줘, 에로스>

synopsis 남자(이강생)는 빚에 쪼들리고 있다. 외롭고 힘들고 지쳐 있다. 삶의 희망이라곤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밖에는 없다. 담배 가게에 아가씨(인신)가 새로 온다. 남자가 담배를 사며 쓸모없는 옛날 동전을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서로 말을 나누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남자의 방황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담배 가게 아가씨는 남자를 떠나, 도시를 떠나 어디론가 가버린다.

<도와줘, 에로스>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산다. 가장 외로운 건 빚을 지고 아무 희망없이 집 안의 가재도구를 하나씩 내다팔며 삶을 연명하고 하루 종일 마리화나나 피워대는 주인공 남자다. 그는 담배 가게 아가씨와 친해져서 사랑함의 관계 그 어디까지 근접하지만 그녀가 떠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또 다른 인물도 등장한다. 주인공 남자와 온라인 채팅을 주고받는 여자는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 게이인 남편은 집 안에 그의 연인을 두고 산다. 여자는 그냥 남편이 해주는 밥을 묵묵히 먹고 점점 더 뚱뚱해지기만 한다. 이 이상한 인물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의 많은 장면은 이렇게 말한다. 외로워요, 외로워요, 사랑하게 해주세요. 무언가 지독한 결핍으로 몸을 떠는 인물들. 이 영화는 절실한 조난신호다.

<도와줘, 에로스>는 차이밍량의 모든 장편 극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한 대만 배우 이강생이 <불견>에 이어 만든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이강생은 영화의 가나다를 차이밍량에게서 배웠고, 이 영화의 제작도 차이밍량이다. 이강생 또한 그런 영향력을 일부러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인물의 관계 구도, 감정을 드러내는 공간 점유 방식, 우울하지만 매력적인 뮤지컬신의 삽입 등으로 감독 이강생이 아직 차이밍량 세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오랜만에 차이밍량 스타일의 감수성을 만끽하게 한다(한국의 영화 수입업자들은 차이밍량의 신작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 <얼굴>을 팽개쳐두고 있다). 하지만 <불견>이 데뷔작이라는 관용도 안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면 <도와줘, 에로스>는 두 번째 작품까지 연출한 감독으로서 보여주어야 할 자신만의 창의적 방향을 잡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남는다. 도시의 무관심한 매일 밤을 애처롭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감정은 더없이 외로운데, 그 외로움을 표현하는 밀도가 다소 낮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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