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951) 월트 디즈니는 스튜디오를 차리는 그 순간부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애니메이션 버전을 무척 만들고 싶어 했다. 문제는 각본이었다. 무려 열명이 넘는 각본가의 손을 거치며(심지어 올더스 헉슬리도 포함된다) 최선을 다해 ‘가족 애니메이션’을 지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여쁜 악몽의 비전은 여전히 섬뜩한 기운을 머금고 있다. 욕심 많은 바다표범이 어린 굴을 꼬드겨 포식하는 장면은, 그리고 어린 앨리스가 형형색색 꽃들에게 구박당하고 쫓겨나는 장면은 그 시대 어린이들에게 큰 충격이었으리라. 디즈니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흥행에 실패했다. 지금에 와서는 ‘가장 매혹적인 실패작’이라고 불리며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뭐?>(1972) 로만 폴란스키가 이런 괴작을 만들었던 흑역사도 존재한다. 여기서 앨리스는 예술을 사랑하는 히치하이커 낸시로 바뀐다. 미친 모자장수는 전직 포주이자 변태성욕자(무려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연기한다)로, 3월의 토끼는 딱 달라붙는 청바지만 입은 채 돌아다니며 낸시를 흘깃거리는 청년(폴란스키 본인이 연기한다)으로 등장한다. 한마디로 무시무시한 욕정과 공포가 과잉으로 넘쳐난다. 거물 제작자 카를로 폰티는 완성본을 접한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하고 “뭐야 이게?”라는 외마디를 질렀다고 한다(그래서 제목이 <뭐?>가 되었다는…). 폴란스키의 팬인 평론가 로저 에버트마저 “미치광이가 만든 영화다”라며 격렬한 욕설을 퍼붓게 만든 괴작이다. 개봉 첫주 단돈 64달러의 수익을 올렸다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976) 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하드코어 포르노 뮤지컬이다. 변명하자면 ‘그냥’ 포르노는 아니다. 1960년대 히피들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천진난만한 즐거움과 쾌락의 거리낌없는 찬양이 영화 전편에 넘쳐흐른다. 트위들덤과 트위들디는 열렬한 사랑을 나누는 남매(!), 험프티 덤프티는 의사조차 포기한 발기 불능의 중년 사내다. 영화 내내 전직 플레보이 모델들이 화려한 버섯과 꽃과 담요 속에서 뛰놀며 수줍은 앨리스를 ‘여자’로 변모시키는 과정에선 지금의 성인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품격마저 선사한다. 심지어 1960년대 후반 뮤직신 특유의 무드를 엿볼 수 있는 사운드트랙마저 훌륭하다. 전세계적으로 9천만달러의 흥행을 올린, 역사상 가장 성공한 성인영화 중 한편이다.
<앨리스>(1988) “눈을 감으세요, 안 그러면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할 거예요.”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퍼펫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결합) <앨리스>는, 무수한 말장난과 패러디와 시와 음악과 수학이 뒤섞인 캐럴의 언어로 이뤄진 세계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슈반크마이에르는 두권의 앨리스 소설 속에 배어 있는 두려움과 불안, ‘친숙한 낯섦’의 정서에 집중했다. 영화 내내 되풀이되는 날카롭고 자극적인 칼과 가위의 이미지, 빵을 집어들면 못이 튀어나오고, 흰 토끼 박제의 찢어진 배에선 톱밥이 쏟아져내린다. ‘이상한 나라’는 불쑥 찾아온 침입자 앨리스를 반기지 않고 끊임없이 섬뜩한 공격을 개시한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앨리스는 그 공포로부터 매혹을 맛본다.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세계를 형상화한 많은 작품들 중 최고 걸작의 지위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