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을 비겁하게 공격하는 데 이력이 난 당신, 기만적인 방송용 언행의 전문가인 당신. 그런 당신이 입는 하얀 와이셔츠조차도 불명예스럽습니다. 강자들과 친하고 또 어린 시절부터 아주 부유했던 당신.” 굳이 이런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사람은 다음과 같다. “나는 허무주의자에다 반동적인 인물이며, 냉소적인 사람인 동시에 인종차별주의자에 여성 혐오론자입니다.”
전자는 프랑스의 부르주아 좌파 지식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이고, 후자는 자기파괴적인 우파 소설가 미셸 우엘벡이다. 자칭(타칭) 공공의 적인 두 사람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 편지 교환을 시작한다. 이쪽 진영과 저쪽 진영의 싸움닭이 편지를 주고받으니 재밌는 싸움 구경이 되겠구나 하는 기대는 이들의 지적이고 현란한 블랙유머를 엿보는 즐거움으로 바뀐다. 은근한 폭로전과 자기고백도. 베르나르 앙리 레비가 구글에 자기 이름이 뜰 때마다 실시간 알람이 울리게 해두는 것으로 모자라 악플러 위치 추적을 한다거나, 미셸 우엘벡이 자신의 진실한 욕망은 사랑받고 싶다는 것이며, ‘나의 어머니라는 시시한 여자’가 쓴 책 때문에 폭로된 가족사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라든지. 편지는 참으로 길게 이어지고 가끔은 책을 덮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지성이 하늘을 찌르지만, 68혁명을 거쳐 21세기를 현재형으로 살아가는 두 남자가 모든 면에서 정반대인 상대를 인정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은 2010년을 대한민국에서 사는 소시민의 눈에는 천상의 아름다움으로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