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조희문, 이하 영진위)를 향한 영화계 안팎의 비난이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지고 있다. 영상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 공모 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자 영진위는 조희문 위원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진화를 시도했지만 궁금증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공모 심사 결과가 일부 드러나면서 영상미디어센터 운영자로 선정된 시민영상문화기구(이사장 장원재),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자로 선정된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이사장 최공재) 등에 대한 특혜 시비는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의 ‘조작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2월4일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두번에 걸쳐 이뤄진 영진위의 사업 공모 과정은 오점투성이다. 시민영상문화기구는 1차 공모 평가 결과 ‘꼴찌’였던 문화미래포럼의 사업계획서를 고스란히 넘겨받아 2차 공모에 응했고 1등이 됐다. 시민영상문화기구는 문화미래포럼의 사업계획서에 4페이지짜리 ‘중기 계획안’만을 추가했을 따름이다. 1차 공모에서 4개 단체 중 3위였던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 또한 4쪽짜리 ‘유통사업 계획서’를 추가해 재공모에서는 사업운영자로 선정되는 행운(?)을 누렸다.
심사위원들의 이해관계를 감안할 때 애초 공정한 심사는 불가능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운영자 공모 선정 취소 소송과 효력정지 청구 소송에 들어갈 예정인 인디포럼 작가회의는 “시민영상문화기구와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는 모두 조희문 위원장이 법인 설립자인 문화미래포럼과 그 협력단체인 비상업영화기구와 관련이 있다”고 비판했다. 2차 심사위원들 중에는 복환모, 육정학 등 문화미래포럼 회원들이 끼어 있을뿐더러 김시무 영화평론가의 경우 1차 공모에 응했던 비상업영화기구의 자문위원이기까지 하다.
전문성있는 인사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했고, 심사과정 및 결과는 공정했다고 밝힌 영진위는 기자회견 이후 입을 다물고 있다. 영화계 안팎의 단체들이 세부 심사표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1주일 뒤에 응답해주겠다”던 영진위는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답을 미루고 있다.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은 “2월4일에 항의방문을 통해 구두로 민원을 제기한 지 2주일이 지났고, 정보공개를 청구한 지도 3주일이 넘었다”고 말했다. 최문순 의원실 또한 2월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영진위 업무보고를 앞두고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한 상태다.
대신 영진위는 ‘밀어붙이기’식 공모를 계속 진행 중이다. 2월10일에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원사업 운영자’를 공모하겠다고 발표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원사업의 경우, 영진위는 “전체 예산의 30%에 불과한 임대료만을 부담”해온 터라 영상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보다 공모 반대 목소리가 더 높았다. 영진위는 공모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진위는 최근의 공모사업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청회 한번 열지 않고 ‘지원사업 운영자’라는 요상한 이름을 붙여 공모를 추진하고 있다.
여론 수렴 따위는 필요없다는 영진위의 후안무치한 태도는 영화계의 집단적인 반발을 부추기고 있다. 2월17일 100명이 넘는 독립영화인들이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가 운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에 프린트를 내놓지 않겠다는 보이콧 선언을 했고, 서울아트시네마, 미디액트 후원 열기는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독립영화뿐만 아니라 상업영화 진영에서도 ‘자율’이라는 정체성을 저버린 영진위에 대한 대응이 이어질 계획이다. 유령단체들을 위해 자기부정까지 서슴지 않는 영진위는 점점 유령기구가 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파행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실책을 거듭하며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영진위에 대해 3인의 영화계 안팎 인사들이 쓴소리를 뱉었다. 지난해 영진위의 단체사업지원에서 ‘촛불단체’로 지목되어 탈락한 인권영화제, 인디포럼 작가회의의 관련 법적 소송을 돕고 있는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MB 정부의 문화정책 실종을 끊임없이 비판해온 최문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 <워낭소리> 제작자이자 <똥파리>의 성공을 이끈 고영재 프로듀서 등 좌담에 참석한 3인의 인사들은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영진위와 이를 방관하는 정부에 대해 비판의 칼을 벼렸다.
씨네21: 영화진흥위원회의 영상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자 공모가 논란이 되고 있다. 심사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높다.
최문순: <씨네21>은 언론이라 말을 아끼시는데. (웃음) 공정성, 투명성 같은 고상한 말을 쓸 필요도 없다. 완전히 ‘카메라 출동’ 감이다. (최문순 의원은 MBC 기자 시절 보도국 사회부 기동취재반에서 일했다) 복숭아 캔을 땄는데 안에 번데기가 들어 있는 격이다. 대국민 사기극이지. 볼수록 화딱지가 난다. 우리 사진 찍지 말고 이걸(시민영상문화기구의 사업계획서) 찍어서 내보내라. 1차 공모 때 문화미래포럼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와 완전히 똑같다. 목차 제목도 똑같고, 글씨체를 좀 바꿨을 뿐이다. 별 내용없는 4쪽짜리 중기계획안만 달랑 추가됐다. 그런데 1차 공모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은 이 사업계획서가 2차 공모에서 1등을 했다. 눈속임도 정성껏 해야지, 경악 수준이다.
박경신: 영진위쪽에서는 1차 때와 2차 때 심사위원들이 바뀌었다고 변명하진 않나.
고영재: 영진위는, 심사위원은 전문가를 선정했으며 공정한 심사 결과를 받아들였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최문순: 문화미래포럼을 중심으로 심사위원과 선정단체 인사들이 모두 얽혀 있다.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이 문화미래포럼 설립발기인인데다 2차 심사위원장인 복환모 교수도 문화미래포럼 소속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1차 때 문화미래포럼과 함께 공모에 응한 비상업영화기구의 전문위원이다. 게다가 김종국씨는 문화미래포럼과 시민영상문화기구의 사업계획서 모두에 소장으로 기재되어 있다. 동일 단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시민영상문화기구 장원재 이사장은 문화미래포럼 회원이며,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자로 선정된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 자문위원이다. 또한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 이사장 최공재는 시민영상문화기구 자문위원이다.
고영재: (시민영상문화기구가 제출한 사업계획서의 중기계획안을 훑어본 뒤) 영상미디어센터에 대한 이해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 영상미디어센터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필요성이 제기됐다. 영화교육기관에서 정규과정을 이수하지 않아도 인문적인 소양만 있으면 충분히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장비를 대여하는 곳이 영상미디어센터다. 누구든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저렴하게 장비를 대여받아 창작물을 좀더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시민영상문화기구는 장비뿐만 아니라 고급 기술인력까지 제공하겠다고 한다. 퍼블릭액세스가 뭔지 모르는 거다. 하긴 영진위의 결정에 반대하는 미디액트 수강생들이 영상미디어센터 소장으로 내정된 김종국 교수와 면담을 했는데 “퍼블릭액세스는 안 한다”고 했다더라. 영진위가 공모 때 내건 영상미디어센터의 목표가 뭔가. 퍼블릭액세스, 영상미디어교육, 독립영화 제작지원 활성화다.
최문순: 스스로 공격받을 거리를 만들고 있구먼.
박경신: 심사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이나 절차 측면에서도 실수한 것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애초 심사항목대로 점수를 주지 않고 빈칸으로 처리한 뒤 총점만 부여하는 식으로. 심사의 내용에 대해서는 재량이 주어지지만 절차를 어긴 것은 더 명백하게 소송거리가 될 것이다.
최문순: 4쪽짜리 페이퍼 때문에 점수와 순위가 뒤바뀐다는 것이 말이 되나. 영진위에 요청한 세부 심사표를 받아보면 더 명확해질 것이다. 이 경우에 사문서 위조 형사범으로 고발할 수는 없는지 궁금하다.
박경신: 위조는 A가 문서를 작성했는데 B가 A가 작성하지 않은 내용을 문서에 끼워넣고 ‘A가 작성했다’고 제출해야 성립한다. 그 경우는 아닌 듯하고. 검토가 필요하지만 사업계획서에 허위사실이 기재되어 있다면 공무집행방해를 문제삼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고영재: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의 서류에는 동의를 구하지 않은 스탭의 이름이 끼워져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영진위 심사세칙에 따르면, 허위사실을 기재했음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해당 단체의 선정을 취소할 수 있다.
특정 단체 배제 위해 공모제 악용
씨네21: 영진위는 심사결과 발표 뒤 조희문 위원장이 나서 한 차례의 기자회견을 가진 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영화계 안팎의 공모 심사 자료 요구 또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영재: 조희문 위원장의 기자회견은 본인이 이 사안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자리였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영상미디어센터 공모에 응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를 끄집어내서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와의 연관성을 스스로 해명하려고 했다. 그가 교수였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영화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자율기구의 수장이다. 기자회견은 그야말로 정치적인 제스처였다. 그동안 영상미디어센터는 미디액트가 쭉 운영을 해왔고, 실제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한 경험이 미디액트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므로 영상미디어센터를 운영한 경험이 없는 타 단체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과거보다는 미래의 운영능력에 좀더 주안점을 두고 심사를 진행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맞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는 어설프게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도 시민영상문화기구와 마찬가지로 신생 단체 아니냐고 반문했다. 두 단체를 어떻게 동일 선상에서 이야기할 수 있나. 시민영상문화기구의 경우 운영자로 선정된 뒤 이사로 명기됐던 이가 영상미디어센터사업을 하고자 했던 단체인 줄 몰랐으니, 이사에서 사퇴하겠다고 할 만큼 급조된 단체다. 그렇다면 영상미디어센터 운영기획안을 이사회에서조차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또 장원재 시민영상문화기구 대표와 달리 이상훈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 이사장은 그동안 미디어교육, 퍼블릭액세스에 대해 연구해온 학자다.
박경신: 기자회견에서 조 위원장은 한독협의 감사원 감사를 언급했다. 몇몇 언론은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의 경우 이 때문에 실격 사유가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고영재: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직전에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를 해서 감사가 시작됐는데, 국고로부터 8천만원 이상의 지원을 받은 단체는 모두 감사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는 아직 진행 중이고, 우리는 행정 절차를 따르고 있다. 미디액트도 감사를 받았는데 어떤 지적도 받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한 것도 아닌데 조 위원장은 이 사실을 공개했다는 거다. 발표 전까지 비밀 유지를 해야 하는데 기관장이 어겼고 이는 명예훼손이기도 하다. 한독협과 미디액트가 지난 8년 동안 따로 운영되어왔다는 사실은 영진위가 더 잘 안다. 사무소도 다르고, 사업자등록번호도 다르고, 통장도 따로 있다. 한독협은 미디액트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하며, 사후보고만 받을 뿐이다. 조 위원장의 말처럼 미디액트 이사나 스탭들이 모두 한독협 회원인 것도 아니다. 미디액트의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계약은 2009년 12월31일까지였는데, 영진위는 공모가 늦어지자 1월31일까지 연장계약을 했다.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은 영상미디어센터는 시민들이 주인이니 공백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받아들였다는데 그런 사실조차 몰랐다. 나중에 들은 거다. 한독협과 미디액트의 연관성에 대한 조 위원장의 발언은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최문순: 자기모순이지.
박경신: 공모 자체를 잠깐 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공모가 특정 단체를 배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고영재: 지금까지 영진위는 2008년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왜 특정 단체가 영상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을 계속하느냐고 지적을 받았고, 절차적인 민주성을 획득해야 하기 때문에 공모로 전환했다고 해왔다. 나도 그때 국정감사를 지켜봤는데 공모를 하라는 이야기가 나오진 않았다. 다만 단체사업지원 등의 경우 한독협 등이 촛불단체인데 왜 지원하느냐는 것이 문제가 됐다. 그 뒤 강한섭 전 위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강하게 요구를 해서 공모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재정부 등이 공모를 시행하라고 한 지침이 있으면 문서를 보여달라고 했는데 영진위는 공식적인 문서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영진위는 그동안 공모, 공모, 공모 해왔다. 왜 공모로 전환해야 하는지에 대한 영진위의 공식 의견은 없는데도 말이다.
박경신: 국정감사에서 촛불단체라는 말이 나왔나.
고영재: 나왔다.
박경신: 싸움의 대상이 영진위가 아니라 그 뒤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독립영화전용관의 경우도 행정소송을 검토하고 있는데 국내 행정소송은 이의제기할 수 있는 범위가 좀 제한적이다. 국가의 재정지원이 의무가 아닌 경우에는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국가의 자발적인 재정지원에 대해서는 국가의 재량을 인정해야 한다는 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재량이 인정되는 분야에서도 국가가 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견해 차에 따른 차별(viewpoint discrimination)이다.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국가작용의 중립성을 위반한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입장이 정부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사상통제의 일환이 되기 때문이다. 인권영화제나 인디포럼 작가회의가 단체사업지원에서 탈락한 것은 촛불집회와의 연관성 때문이어서 실제 소송을 제기했다. 영상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에도 보복성, 표적성을 띠고 있는지 살펴보고 만약 그렇다면 역시 소송대상이 될 수 있다.
고영재: 기존 사업 주체를 검증했는데 더이상 못 맡기겠다는 판단이 있어야 공모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미디액트나 서울아트시네마는 2009년 평가에서 사업을 잘하고 있다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영진위는 공모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해도 기존 사업의 성과를 심사위원들에게 제대로 전달했어야 했다.
최문순: 큰 틀에서 보면 문화, 언론, 예술계에 두 차례의 물갈이가 있었다. 1차 물갈이는 촛불집회 직후였다. 2008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KBS 정연주 사장을 끌어내리고 이병순을 앉혔고, YTN도 구본홍으로 교체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김정헌 위원장을 잘랐고, 영진위는 강한섭이 들어섰다. 그 뒤 2009년 봄에 2차 물갈이가 예고됐는데, 내 생각에는 어차피 다 자기네 사람인데 설마 그렇겠냐 싶었다. 그런데 이병순 자르고 김인규로 바꾸고, 구본홍 대신 배석규가 왔다. 강한섭 위원장도 오래 못 가고 조희문 위원장이 새 위원장이 됐고.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2차 물갈이를 보면서 청와대에서 지휘를 하고 있구나 싶었다. 1차 물갈이는 정권이 바뀌면서 이념에 따른 인적 교체였다면, 두 번째 들어선 사람들은 충성도가 훨씬 강하다. 1차 때 인사들이 연착륙을 위한 바람막이였다면 2차 때는 정권의 오너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중요한 것은 2차 물갈이 인사들은 사업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진짜 보수도 아니다
씨네21: 정부와 영진위의 문화정책이 상식을 거스르고,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비난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영재/ 거시적으로 보면 최 의원님 생각에 동의하지만 영화쪽은 모럴 해저드에 이른 것 같다. 인맥과 학연만이 작동하는 사이비 물갈이다. 그동안 영화계에선 내 영역이 아니면 의뢰를 받아도 거절을 했다. 그게 룰이었다. 예를 들면 고영재는 독립영화인이다. 그런 내가 산업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 1, 2년 사이에 그게 허물어졌다. 몇 십억원짜리 영화를 핸들링하던 회사가 영진위 독립영화 제작지원에 응모한다. 김종국 교수도 마찬가지다. 무슨 활동을 했는지 모를 인사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영진위 사업에 대해 기조발제를 하고, 국회에서 영화산업에 대한 전망을 내놓았다. 영상미디어교육 경험도 없으면서 공모에 응했고 선정됐다. 활동을 제대로 안 했으면 스스로 안 내야 맞는 것 아닌가. 독립영화 전용관 운영자로 선정된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도 마찬가지다. 베를린영화제 수상작들을 상영하겠다는 프로그램을 보도자료로 뿌렸는데, <나무 없는 산>을 제외하면 나머지 다섯편은 이미 개봉한 외화다. 한국 독립영화를 개봉할 수 있는 근거지를 만들자는 근본 사업취지는 어디로 갔는가? 게다가 여섯편 중 다섯편의 수입·배급사는 위드시네마 한곳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독립영화전용관이 특정 수입·배급사의 전유물인가?
최문순: 그런 물갈이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내가 말한 물갈이도 탁한 물갈이인데.
고영재: 정책이 있는 물갈이면 싸울 대상이라도 있지. 보수쪽의 영화정책이라면 산업 중심, 시장 중심으로 사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문화다양성을 내세우는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테크전용관, 영상미디어센터 등은 보수의 논리와 안 맞는다. 진짜 보수면 여기는 죽여야지, 라고 해야지.
박경신: 공모가 아니라 해당 사업을 중단해야 맞는 건데.
고영재: 관련 예산을 차라리 없애고 위기에 처한 산업을 살리겠다고 하면 모르겠다. 최소한의 논리적인 무장조차 안된 이들 때문에 모럴 해저드가 발생한다.
최문순: 자리다툼으로만 생각하는 게 문제다.
고영재: 산업도 마찬가지다. 영진위가 펀드 조성할 때 한달 전부터 자기가 됐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고, 실제로 그 사람이 됐다. 경쟁의 원리조차 제대로 작동이 안된다.
박경신: 시네마테크의 경우 극장과 임대계약을 맺은 주체가 영진위가 아니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다.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이름도 영진위의 소유도 아닌데 그 이름으로 사업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고영재: 한국영화인협회가 주최하는 대종상영화상을 영진위가 지원한다고 해서 영진위가 대종상영화상이라는 행사의 운영 권한을 공모할 수 있나. 한국시네마테크협외회는 영진위와는 2월28일에 계약이 끝나고, 허리우드극장과의 임대계약은 3월까지다. 3월1일부터 새로 선정된 단체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아니라면 그들은 어디에서 전용관 사업을 하나.
최문순: 코미디다. 권한도 없으면서 내가 하겠다고 하니. 질이 아주 나쁜 거지.
씨네21: 듣고보니, 영진위는 질 나쁜 봉이 김선달인 셈이다.
“2년간 40전 40 KO패”… 이제 다른 싸움을 준비한다
고영재: 앞으론 다른 싸움이 전개될 전조가 보인다. 시네마테크전용관은 자발적인 모금액만 5천만원이 넘었다. 미디액트 건립운동도 시작되고 있다. 외려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독립영화 상영공간으로 대학로 소극장을 알아보고 있기도 하다. 필름 영사기가 없으면 어떤가. 정권 바뀔 때마다 험한 꼴 당하는 것보다 낫다. 영진위 정책 중 어떤 것도 믿지 못하겠다.
박경신: 좋은 콘텐츠는 계속 언더로 가고 주류공간에서는 친정부적 저질 콘텐츠만 뜨고. 장기적으로는 그게 우려가 된다. <요덕스토리>만 하더라도 국립극장에서 계속 날짜 없다고 하다가 갑자기 받아주고, 정부에서 10억원 지원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입장에서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할 텐데. 관에서 선별해서 밀어붙인다고 문화가 발전하는 게 아니잖나. 보수적인 문화이론가도 문화의 핵심이 다양성이며, 기존의 구조에 대한 도전과 실험이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다양성을 이런 식으로 주변화시키면 정부가 바라는 고급 콘텐츠나 수익구조도 더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정책결정자가 우리나라는 문화는 피폐화되고 휴대폰과 차 팔아서 먹고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최문순: 영진위는 사업을 누구랑 하겠다는 것인지. 신기한 건 공모를 하면 2억, 3억원을 받아내기 위해 그걸 또 받아먹으러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고영재: 몇몇 독립영화인들이 권위화됐다. 너네 영화만 영화냐, 우리 영화도 영화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발적인 시도를 통해 그 의미를 인정받고, 그 토대 속에서 입지를 넓히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를 넘었다. 아무것도 없을 때 맨땅에서 시작한 사람들이 분명 있다.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 같은 사람이 혼자서 해외 미디어센터 사례 연구하고 퍼블릭액세스 개념을 확산시키지 않았다면 영상미디어센터가 존재했겠나. 그런데 그런 노력은 인정하지 않고 결과물만 놓고서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기형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안타까운 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 시민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최문순: 나라 전체의 퇴보지.
고영재: 별개의 문제일 수 있는데 영화아카데미의 경우도 우스운 상황이다.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했는데, 조 위원장은 조직 개편을 통해 원장을 공석화하고 사무국장 아래 자리로 만들었다. 공론화 시도 자체가 없었다. 지금 영진위는 행정기관일 뿐이다. 여론 수렴 능력이 전혀 없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일개부서 정도 역할만 하고 있다.
박경신: 영진위의 독립성은 공공성 강화를 위한 기본 전제인데 그게 훼손됐다.
최문순: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국회 책임도 크다. 농담처럼 지난 2년 동안 40전 40패 40KO패를 당했다고 말하곤 한다. 언론악법은 무승부로 끌고 오다가 결국 졌고. 방송의 경우 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법을 제정해놨는데도 자꾸 무시하고 침해하니….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욕을 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게 최선이지. (웃음) 방송의 경우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내용의 개정 법안을 제정하려고 준비 중이다. 영진위도 정치적인 입김을 받지 않도록 관련 법 등을 손질해야 한다. 위원 구성도 여성, 사회적 계층, 지역별로 나누어 명확하게 규정을 하고.
고영재: 현 영진위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구성됐는데, 지난 정권 말기에 이 법률을 제정한 이들도 이 법이 어떻게 쓰일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결국 정부가 위원장을 내리꽂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경신: 위원장 직선제는 아니더라도 영진위의 중앙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검토해봐야 한다. 공공성의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라는 문제는 난해하긴 한데 해답을 찾아봐야 한다.
최문순: 이른 시일 내에 관련 토론회를 기획해보자.
고영재: 영진위 이대로 좋은가?
최문순: 그걸론 부족하다. 영진위 해체하고 재구성하자고 해야지.
박경신: 마스터영화제작지원 결과도 논란이 일었던데. 그것도 묶어서 토론해야 한다.
최문순: 이창동 감독한테 잠깐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영진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조차 싫다고 하더라. 심사 자료 등이 나오면 국회 차원에서 영진위를 한번 항의 방문해서 따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