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밋밋하다. 한때 소설가를 지망했으나 지금은 대필로 근근이 먹고사는 사내가 나직한 목소리로 사는 이야기를 읊조릴 뿐이다. 사무실의 “고요, 텁텁한 공기, 말을 걸어오는 사물들”에 둘러싸인 채 원고를 다듬고 일감 청탁 전화를 기다리며 종종 낮술도 마신다나. 신기한 제안이 하나 들어오긴 한다. 우연히 만난 노인이 자신의 삶을 소설로 써보라는 것이다. 이제 이야기가 좀 변하나 싶은데, 아니다. 노인이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소설쓰기 프로젝트는 싱겁게 끝난다. 그는 노인의 장례식장에 찾아갔다 별일없이 돌아와 다시 일상을 말한다. 조곤조곤, 서두르지 않고, 적당히 감상에 젖어들다가도 담백하게 빠져나오는 균형을 유지하며.
특별한 사건없이 하루하루 날적이 쓰듯 진행되는 소설은 언뜻 쓰기 쉬워 보이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다. 추진력을 얻기 어려운 탓. 그런데 작가는 은근한 끈기로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긴 시간 동안 주변을 관찰하며 내공을 축적해온 덕분. 주인공의 눈에 비친 동네는, 초라하고 단조로운 풍경이 아니라 “세월을 견뎌온 고유한 질감”이 배어 있는 공간이다. 삼거리 실내 포장마차는 장사가 잘 안돼 세번이나 업종을 바꾼 안타까운 곳이고, 하나은행 365코너는 어느 날 새벽 젊은 여자 둘이서 깔깔대며 싸우던 모습이 상큼했던 곳. 홍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100m만 걸으면 올 수 있다는 사무실 약도 설명이나, 군데군데 끼어든 퓨전 술집 ‘짱구야 학교 가자’, 분식집 ‘김밥과 함께 라면’ 같은 동네 가게 이름들을 보다보면 사소설 같기도 하다. 환상적인 설정이 끼어들긴 하나 일상에 대한 단단한 관찰을 토대로 삼고 있다 보니 환상마저도 사실처럼 다가온다.
만일 일상을 냉정하고 이성적인 시선으로 관찰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길로 흘렀으리라. 젊은 날 잘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질시와 자격지심으로 직장 생활을 제대로 못하다 시골로 내려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그는 “이룬 것 없이 중년이 되어가는 인생”이 아쉽고 또 아쉽다. 하지만 열패감에 빠지기도 싫고 균형감각을 잃기도 싫다. 그래서 그는 필사적으로 일상을 관찰하며 소소한 의미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착하고 다정했던 아내와 시골에서 키운 강아지들이 “순간적으로 목을 메게 하는” 기억과 환상을 그에게 안겨주니 버틸 수 있다. 밋밋해도 지겹지 않은 투명한 물 같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