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에 매혹되다 지수 ★★★★☆ 무섭다 지수 ★☆
“불가능을 제외하고 남는 것이 설령 믿을 수 없는 것이라도, 그게 진실이다.” 셜록 홈스의 이 유명한 경구는 일본의 ‘명탐정 코난’에서부터 <CSI>의 그리섬 반장까지가 읊곤 하는 미스터리의 법칙 중 하나로 취급받는다. 미스터리에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기기묘묘한 트릭들은 그런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담이나 괴담은 어떨까? 논리적인 사고의 영역 너머에 존재하는 무섭고 이상한 이야기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탐정소설 ‘도리모노’의 시작을 알린 <한시치 체포록>은 셜록 홈스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는 오카모토 기도가 1917년 발표한 일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메이지유신 이전 일본사회를 만화경처럼 흥미진진하게 들여다보게 해주는 이 책을,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소설을 쓰기 전에 항상 읽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기담과 괴담을 다루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의 소행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기실 인간에게서 시작된다.
단편 <쓰노쿠니야>는 괴담으로 시작해 명쾌한 미스터리로 끝난다. 쓰노쿠니야라는 술 도매상이 곧 망하리라는 소문이 떠돈다. 그 집에서 친자식을 낳으면서 큰딸로 키워온 양녀를 버린 탓에 귀신이 씌었다고 생각하는 주변인의 시선과 연달아 발생하는 죽음의 음산한 분위기가 당시 서민들의 삶과 조화를 이루며 진행된다. 주인공 한시치를 처음 소개하는 단편인 <오후미의 혼령>은 일본 공포만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낸다. 재앙을 당하지 않을까 겁먹은 등장인물을 묘사하면서 진지하게 “가까운 절로 날마다 참배를 하러다니기 시작했다”고 쓰는 것은 전근대성 묘사의 일환이겠으나, 100년이 지난 지금도 뭐가 다른가 싶어 웃게 된다. 인간세상은 징글맞도록 변하지 않는다. 그때도 사이코패스가 있었고, 꽃뱀이 있었고, 미신이 있었다. 이 책은 깜짝 놀랄 반전이나 화려한 속도감이 아닌, 느릿느릿 구전되는 옛이야기의 매혹을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에게는 미야베 미유키의 <메롱>이나 하다케나카 메구미의 <샤바케> 시리즈,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를 추천한다.
사족. 일본에서는 여우뿐만 아니라 너구리와 수달도 사람으로 둔갑하는 동물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한시치 체포록>에 수록된 한 단편의 주석에 따르면 그렇다. 여우, 너구리, 수달? 어쩐지 난데없지만, <보노보노>를 떠올리신 분은 없는지? 귀여워 보이지만 혹시 모르지 않는가 말이다. 사람으로 둔갑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