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강남 올 로케이션을 카피로 내건 90년대 수목드라마 같다. 요가 강사이자 소설가인 서인. 그녀는 ‘유부남 앓이’ 중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친구와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한 사내가 홀연히 나타난다. 묘한 눈빛과 순교자처럼 압도적인 분위기를 지닌 남자 선우. 그는 끈질기게 구애하는 어린 여제자도 뿌리치고 서인을 택한다. 운명이니까. 그들은 남자가 잡아온 생선을 안주 삼아 술을 나눠 마시고 요가의 섹스 체위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격렬한 정사를 실행한다.
그런데 중반으로 접어들며 이야기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방향을 바꾼다. 서인은 선우라는 남자를 도통 모르겠다. 그는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다가도 어느 순간 감정없는 섹스머신으로 돌변한다. 또 선우 본인은 모른다고 발뺌하는 불쾌한 과거가 자꾸 등장하고, 달갑지 않은 실종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서인의 근심은 깊어만 간다. 과연 그는 그녀를 구원해줄 천사인가 아니면 그녀를 파멸로 몰아넣을 악마인가. 이렇게 그들의 연애는 어둡고 끈적이는 통속 추리극으로 전환되나, 대담한 트릭이나 뒤통수 때리는 결말은 없다. 애초에 치밀하게 플롯을 짜지 않고 실종과 살인, 기억상실 같은 설정들을 편의적으로 끌어와서 이야기를 끌고 간 탓이다. 하지만 전개가 빠르고 문장이 감각적이어서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은 있다.
연인이 나를 죽음으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치명적인 사랑의 핵심이다. 안드레이 줄랍스키의 고전 <포제션>에서 남편은 광기에 사로잡힌 아내에게 집착하여 아내의 심연을 파고들었다. 또 <4월의 물고기>처럼 나이 든 직업여성이 주인공인 경우도 있다. 제인 캠피온의 <인 더 컷>에서 여형사는 연쇄살인 사건과 사랑을 동시에 만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4월의 물고기>는 성인이 주인공이되 살 떨리게 민감한 소녀 감성을 다룬 순정물에 가깝다. 소설은 살인이건 성폭력이건 뭐든 다 감싸안는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는 결론을 택했는데, 소년소녀에게 잘 어울리는 얘기다. 서인 본인도 자신을 소녀라고 느끼는 바, 심리적 나이뿐 아니라 물리적 나이도 어렸다면 공감의 폭이 커졌을지도 모르겠다. 독자에 따라서는 먹고사는 문제에 초연한 30대 싱글 라이프의 럭셔리한 표면을 훑는 묘사가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한때 표절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작가가 좀더 성숙한 작품을 가지고 돌아오길 바랐던 독자라면 다소 아쉬울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