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로 추천한다 지수 ★★★★★ 세노 갓파의 다른 책도 샀다 지수 ★★★★★
엿보고 싶었던 곳을 누가 대신 엿보고 와서 시시콜콜 말해주고 그려 보여준다. 19금 딱지를 붙여야 하는 식의 엿보기는 아니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식의 팻말 너머의 공간 너머를 기웃거린다는 뜻이다. 외과병원 수술실, 기상청 지진예지 정보과 현업실, 목수의 세공장, 도예가의 물레 공방, 연예엔터테인먼트 회사 회장 사무실, 항공우주기술 연구소 시뮬레이터, 천문대, 교향악단의 무대, 동물병원과 대통령·총리 집무실…. 경험담을 쓴 소설 <소년H>의 작가이자 무대미술가, 수필가, 일러스트레이터인 세노 갓파의 <작업실 탐닉>은 이런 수많은 작업실을 찾아 꼼꼼히 평면도를 그리고 작업실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어 뒷이야기를 전한다. 이 책이 소개하는 작업실 주인으로 따지면 (한국인으로서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도 마냥 신기해 책을 뒤적거리는 까닭은 아기자기한 책의 구성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 모르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홀린 듯 읽게 하는 이 세세한 일러스트와 담백한 코멘트라니.
세노 갓파가 외과병원 수술실을 찾는 장면은 웃지 않을 수 없다. 수술에 대한 공포에 떨면서도 치질 수술이 잘된 것에 감사하며 사는 그는 결국 취재 중에 빈혈을 일으켜 쓰러지고 만다. 취재대상이었던 일본 치질 치료의 일인자 마에다 쇼지는 “이상하리만치 (병원에 대한) 공포심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은 도저히 성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삿포로 교향악단의 공연 중 무대 광경을 그린 대목에서는, ‘트라이앵글을 연주하는 사람은 기다리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책을 읽고 있다’처럼 어딘가 쓸데없어 보이지만 은근 재미있는 캡션을 악기별로 다 적어두었다. 이미 세상을 뜬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경우, 그가 <설국>을 집필했으며 <설국>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다카한 료칸을 찾았다. 그가 머물며 글을 썼던 방의 평면도에는 두개의 출입구가 보이는데, 그가 게이샤와 함께 지냈던 터라 료칸 주인은 게이샤가 숨을 수 있게 “선생님!” 하고 꼭 인기척을 내고 방에 들어갔다는 에피소드가 곁들여진다. “국경의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는 그 유명한 문장을 떠올리면 뜻밖이지만, 가와바타는 겨울에 투숙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뚝심있는 생활인들의 생활철학을 들을 수 있는 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