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커버스타
[장혁] 나의 액션은 내가 디자인한다

<추노>의 장혁

“세상 참 지랄맞네.” 가족도 잃고, 신분도 잃고, 연인도 잃은 <추노>의 이대길이 말한다. 무정한 세상에 앙갚음이라도 하듯 그는 거칠고 괴팍한 성격으로 무장한 채 노비들을 추격한다. 그런데 가진 거라곤 악다구니뿐인 이 사내 때문에 요즘 전국이 난리다. 대길이가 가슴팍을 풀어헤친 채 절권도 액션을 선보일 때마다 시청자는 열광하고,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가 요즘 포털 사이트의 최대 화젯거리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은 도대체 배우 장혁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는 거다. 리듬감 좋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라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이대길을 연기하는 지금처럼 장혁이 뜨거운 적은 없었다. 심정의 변화라도 겪은 걸까. 혹은 어떤 계기라도 있은 걸까. 장혁은 이렇게 대답한다. 변한 건 나이뿐이라고, 그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인 것뿐이라고. 그러니까 그의 전성기를 주도한 건 변화가 아니라 매 순간 차곡차곡 쌓아놓은 성실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실함으로 가장 뜨거운 위치에 오른 배우답게 장혁은 인터뷰 질문마다 가볍게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짧은 질문에 길게 답변했고, 그 대답에 맞는 적절한 사례를 형용사 수식하듯 내놓았다. 어느새 인터뷰를 자신의 페이스에 맞춰가고 있는 이 배우를 보면서 그가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방식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실제로 보니 얼굴이 훨씬 더 탄 것 같다. 촬영 때문인가. =<추노> 때문에 태닝도 했고, 아침에 촬영이 있어서 메이크업도 했다. 지금 지방에서 15~6부 분량을 촬영하고 바로 올라와서 그럴 거다.

-10화를 기점으로 <추노>의 큰 흐름이 바뀌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길이의 원수인 큰놈이(조재완)를 비롯해 많은 인물들이 죽음으로 퇴장했고 곁가지 에피소드 또한 정리된 느낌이다. =그렇다. 11화부터는 후반전이다. 초반에 우리가 추격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추격을 당하게 된다. 여기서 재밌는 건 우리가 추노꾼이다보니 쫓는 사람의 심리를 다 알잖나. 그래서 게릴라전을 하게 되는데 그런 장면을 보는 재미가 있을 거다.

-<추노>는 일정 부분 사전제작됐지만 역시 방영 중이다보니 촬영 스케줄이 빠듯할 것 같다. =뭐 아직까지는 방송보다 앞서가고 있으니까…. 대본이 생각했던 것보다 늦게 나온다 해도 감정선은 다 가지고 있는 상황이니 괜찮다.

-대본을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나. =대본은 토대라고 생각하는데, 그 토대에서 어떻게 의외성을 보여줄지를 고민한다. 촬영장에서도 이 대사는 조금 더 묘사가 됐으면 좋겠다거나 이 대사는 좀더 압축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감독님과 나누며 캐릭터를 잡아가고 있다.

-‘의외성’이라고 하니 대길이 얼굴의 칼자국을 제작진에게 먼저 제안했다는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어쩌다 그런 제안을 하게 됐나. =대길이의 과거와 현재가 극명하게 대비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에선 대길이 도령에서 추노꾼으로 변한 10년의 세월을 안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시간의 간극을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화법이나 행동 패턴처럼 연기로 표현해야 하는 변화도 있지만 얼굴의 칼자국은 외적으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제안했다.

-혹시 얼굴의 상처 말고도 직접 제안해 수정된 부분이 있나. =액션의 경우 무술감독님이 총체적으로 흐름은 잡아주지만 내 출연파트는 스스로 (액션을) 디자인한다. 대길이가 쓰는 무술은 노비를 잡을 때나 자기 생존에 필요한 실전용이다. 그런 느낌이 절권도를 닮았다고 생각해 절권도를 혼용한 액션을 무술감독님에게 제안해봤다. 사실 액션의 합이나 퍼포먼스를 만드는 건 무술감독의 영역이라 내가 제안하는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감독님이 오픈된 분이라 잘 받아주셨다.

-10여년 동안 수련해온 절권도 실력이 수준급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처음 절권도를 시작한 계기가 소속사 사장의 권유라고 들었다. =배우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활동 무대를 넓히기 위해서다. 당시 소속사 사장님은 아시아 배우로서 퍼포먼스가 안되는데 영어만 잘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퍼포먼스의 필요성을 느껴 처음엔 소림사에 가려고 했다. 그런데 작품할 때는 한국에 와 있다가 끝나면 다시 소림사로 가서 수련하는 건 너무 무리라고 생각해서 주변을 물색해 절권도장에 갔다.

-처음에는 그런 목적으로 배웠지만 절권도를 꾸준히 하게 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일단 배우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내 신체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됐고, 감각에 더 예민해지게 됐다. 절권도를 하다보면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경우가 있다. 생각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중에 그냥 행동이 되는 거지. 이처럼 액션과 리액션, 리듬, 템포와 밸런스를 맞추는 데 절권도가 도움을 준다.

-<추노>에서 보여준 무술 솜씨 때문에 액션영화나 드라마 제안이 많이 들어올 텐데. =(진지한 표정으로) 배우는 밸런스를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액션의 영역을 잘 표현하고 싶지만 액션배우로만 남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옹박>의 화려함과 테크니션적인 요소도 좋지만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처럼 철학이 들어 있는 영화의 액션이 더 마음에 든다. <추노>를 끝내고 나서 어떤 영화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직 ‘액션’ 때문에 영화에 출연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는 히트작(<명랑소녀 성공기> <고맙습니다> <타짜> 등)이 많은 반면, 영화로 크게 주목받은 적은 없는 듯하다.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이냐는 거다. 시청률과 흥행은 플러스 알파다. 배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이 작품을 보게끔 홍보하는 영역과 카메라 속에 들어가서 캐릭터를 살리는 부분 말고는 없다. (흥행이) 잘되기를 염원할 수는 있겠지만 그 시간에 배우로서의 임무를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다.

-제대하고 나서 선택한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 <토끼와 리저드> <오감도>는 규모가 다소 작았다.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기 전 몸풀기로 선택한 작품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군대에 다녀오니 영화 제작여건이 어려워졌더라.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대중성보다는 인디적인 성향을 보고 출연을 결정했고, <토끼와 리저드>는 처음엔 출연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런 작은 영화도 시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참여했다. <오감도>도 비슷한 의도에서 출연했지만 내 에피소드만 책임지면 돼 부담이 없다는 점도 좋았다.

-제대한 뒤 배우로서 한층 성숙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인이 스스로 생각할 때는 어떤 점이 달라진 것 같나. =바뀐 건 나이가 한살 한살 늘어가는 것? 뭔가 확 바뀌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내 생각엔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느냐에 달린 것 같다. 예를 들어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라고 물었을 때 일곱살짜리 아이의 대답과 열아홉살의 대답은 분명히 다를 거다. 이렇게 말하는 지점이 다른 건 경험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도 그런 것 같다. 내 20대 모습의 패턴과 기조가 있을 거고 30대의 경험으로 표현하는 게 있을 거고.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지.

-배우 장혁의 20대와 30대 모습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지금까지 몇명을 좋아해봤나? 이성을. (기자가 우물쭈물하자) 어찌됐든 다들 똑같지 않을 거다. 각자의 성향과 분위기가 다를 테고. 캐릭터도 그런 것 같다. 단순히 상업적인 캐릭터와 아트적인 캐릭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인 캐릭터 안에서도 상황에 따라 무수히 다양한 모습이 존재한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스물한살, 스물두살, 스물세살의 캐릭터가 모두 다른 거다.

-개인적으로는 20대와 30대의 간극이 클 듯하다.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었으니. =그렇다. 가족 구성원이 한명씩 늘어날 때마다 체감온도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기름을 많이 틀게 되니까. 하하하. 농담이고, 집의 분위기나 느낌이 굉장히 따뜻하다. 첫째아들 있을 때와 둘째아들까지 있을 때가 다르더라.

-부인은 드라마 모니터를 잘해주나. =그렇다. 내용이 궁금하다고 대본 좀 보여달라는데 안 갖다준다. (웃음) 그냥 TV로 보라고 하지.

-아무래도 지금 시점에서 가장 궁금한 건 역시 결말이다. 인터뷰에서 늘 이대길이란 인물이 <여명의 눈동자>의 최대치와 닮은 점이 있다고 언급했는데, 그렇다면 대길의 운명도 대치와 마찬가지로 비극적으로 끝나게 될까. =비극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여명의 눈동자>의 최대치도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여인 곁에서 행복하게 죽지 않았나. 심리적인 느낌으로는 결코 비극이라고 할 수 없는 결말이 될 것이다.

-기대하고 있겠다. 인터뷰 감사하…. =(말을 끊으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해도 되나. (그렇다고 하자) 작품을 하다 보면 외적인 부분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추노>에서는 이다해라는 배우가 그런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올랐는데 분명 옆에서 보기엔 열심히 하고 있고 나름대로 자기표현하려는 걸 잘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가 노력한 부분을 좀 봐주었으면 한다. 또 한 가지는 내 키 얘긴데, 정말 그 기사 보고 충격 먹었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하다보니 내 키가 170cm가 안된다, 168cm다라는 루머가 있던데 정확하게 써달라. 내 키는 175cm다. 지금도 나 정도면 작은 키가 아닌데 요즘 젊은 친구들이 워낙 크니까 그런 얘기가 나왔나보다. 175cm에 꼭 빨간색으로 표시하고 동그라미까지 쳐주시라.

관련영화

관련인물

스타일리스트 권성진·헤어 순수 이순철·메이크업 순수 MIKA·의상협찬 지오송지오, SIEG FAHRENHEIT, 페라가모, 미소페, 소다옴므, 디젤, 존 바바토스, MC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