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고2 겨울방학, 태훈(서준영)은 여자친구 미정(이민지)과 함께 동해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만난 지 100일 된 어린 연인은 즐겁지만 이 여행은 부모의 허락없이 진행된 사실상의 가출이다. 집으로 돌아온 태훈은 부모에게 혼나고, 미정의 부모는 태훈에게 다시는 미정을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반발심에 태훈은 집을 나와 중국집 배달원으로 일하며 미정을 만나려 하지만, 태훈과 달리 미정은 그를 피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치명타는 모든 디테일을 잊어버린다는 데 있다. ‘나도 한때 저랬지’는 어른만이 구사하는 식상한 문장일 뿐. 절실함이라곤 사라진 껍데기뿐의 회한이다. 한때는 미칠 듯이 자유를 갈구하고,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어른을 원망하고,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꽤 반항심도 길렀겠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지금 나는 어른이고 사춘기에 꿈꾸던 식의 자유 따위는 쓸모없는 감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 나이인걸.
<회오리바람>은 그 감상의 시기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어른들에게 쥐어주는 현미경이다. 실은 그 시절 당신도 맘에 드는 이성과 연애를 하고 싶었으며, 반항심에 대책없이 집을 나와본 적 있고,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애써 키웠던 감정을 접었던 기억도 있었노라고. 이젠 무뎌졌을지 몰라도 그 소용돌이 속에 감정을 내맡겼던 때를 당신들도 지나왔노라고. 멋대로 여자친구와 집을 나가고, 학교를 빼먹고 중국집 배달원을 하는 태훈의 ‘탈선’은 그래서 ‘나도 한때 저랬지’ 정도로 감상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디테일한 개별의 사건이다. 특히 부모에게 야단맞고, 여자친구 부모에게 구타당하고, 깡패에게 얻어터지는 태훈의 사춘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시절의 압박을 떠올릴 정도로 강렬하다.
실제 본인의 고교 시절 방황을 소재로 삼았다는 장건재 감독은 섣부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민감했던 태훈의 몇 개월을 묘사하는 것만으로 사춘기라는 시절을 정의한다. 별다른 기교는 없지만 꽤 담백한 엿보기다. 1억원의 적은 제작비에도 거슬리지 않는 완성도다. 태훈을 연기한 서준영을 비롯해 연극배우로 캐스팅된 조연들의 연기도 안정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