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0년 2월18일 목요일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2010년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사업 운영자 공모’ 마감날이다. 마감시한인 오후 6시를 약 20분 넘긴 현재, 공모에 지원한 단체는 없다. 마감 3시간 전에 통화한 김도선 영진위 사무국장은 “지원하는 단체가 없을 경우, 내부 논의를 거쳐 재공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지원한 단체가 한곳도 없었을까.
현재 서울아트시네마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이하 한시협)는 17일 총회를 거쳐 공모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시협이 보도자료를 통해 내놓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진행 중인 공모제는 너무 짧은 일정에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공모제와 관련해 공식적인 사업자 설명회나 장기 비전을 담은 정책도 제시한 적이 없었고, 공모제로의 전환과정이나 합당한 평가절차 등 보완되어야할 사항이 많은데도 개선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사업에 대한 지원여부를 판단할 수는 있을지언정 민간이 설립한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주체를 결정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한시협은 그렇다 쳐도 다른 단체는 왜 안 했을까. 이 역시 한시협이 밝힌 이유를 놓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공모안이 나온 날부터 마감날까지가 일주일, 마감날부터 심사결과 발표까지가 또 일주일이었다. 시민영상문화기구나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처럼 단체를 급조하기에는 촉박한 일정이다. 또한 사업 운영장소와 기간을 놓고 벌어질 파행 가능성 때문에 지원을 주저했을 수도 있다. 영진위는 공모안에서 사업장소를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4-6 허리우드극장 3관(300석)’으로, 운영약정기간을 2010년 3월1일부터로 기재했다. 이 부분에 대해 한시협은 지난 2월16일 공개질의서를 띄웠다. “한시협과 허리우드극장과의 계약기간은 2010년 3월31일까지다. 임대인으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받은 적도 없는 상황에서 운영약정기간을 2010년 3월1일로 명기한 근거는 무엇인가.”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말에 따르면, 허리우드의 극장주는 한시협과 4년을 함께해온 이상 계약주체를 달리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모결과와 상관없이 우리와 재계약을 하겠다고 했다. 관객의 모금활동도 있고 재계약이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이보다 더 큰 걸림돌도 짚어볼 수 있다. 영진위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독립영화전용관과 미디액트 공모 관련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시점이다. 선정이 되더라도 외려 더 큰 비난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아닌가.”
사실상 촉박한 공모일정이나 파행 가능성,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 모두 영진위의 무리한 진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영진위의 지원이 필요없다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얼마가 되든 간에 지원은 필요하다. 단, 지금처럼 논란이 많은 상황에서 영진위가 더욱 철저하게 과정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도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진위가 지금의 공모진행방식을 밀어붙인다면 재공모를 한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듯 보인다. 또한 독립영화전용관과 미디액트 공모와 관련한 의혹을 해명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마침, 지난 2월1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나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문제가 있다면 재공모하겠다”고 답했다. 단, 그는 “정치적인 접근이면 그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이 맞다. 지금 영진위를 향한 목소리의 핵심은 ‘제발 정치적인 접근을 하지 말고 원칙과 절차를 지키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