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영혜(채민서)는 악몽을 꾼 뒤로 고기를 먹지 않는다.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는 남편에게서 고기냄새가 난다며 잠자리를 거부하기도 하고,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는 가족들 앞에서 자해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 한편, 비디오 아티스트인 민호(김현성)는 아내 지혜(김여진)로부터 영혜의 엉덩이에 몽고점이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새 작품 구상에 몰두하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영혜에게 누드모델을 해달라고 제안한다.
“뭐가 문제야. 생활력 강한 아내, 토끼 같은 새끼. 너 하고 싶은 작업 다 하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너 아니야?” 후배는 2년 동안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민호에게 따져 묻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민호의 삶은 위태롭다. 자극없는 진공의 일상으로 감각이 말라죽어가고 있음을 그는 절감한다. 그런 민호에게 영혜는 ‘사건’이다. 정신 잃고 피 흘리는 영혜를 병원까지 들쳐업고 뛰느라 붉게 물든 셔츠를 만지작거리며 민호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얼마 뒤 그는 영혜의 둔부에 몽고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아내 지혜에게 듣고 흥분한다. 몸에 꽃이 피는 여인을 상상하던 민호는 결국 영혜의 몸에 꽃을 그려넣는다.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연작소설(<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다.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스스로를 식물이라 믿는 영혜는 “가랑이 사이에서 꽃이 필” 날을 기다리며 죽어가고 있다. 죽음에 이끌리는 영혜의 환상은 민호에겐 생의 감각을 되찾기 위한 자양분이다. 영혜의 몸이 비쩍 마를수록 민호의 눈은 번득인다. 죄의식과 금기마저도 점점 자라나는 그의 욕망을 거세할 수 없다. 민호는 급기야 처제를 범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원작의 에피소드들을 비교적 충실하게 담아냈지만, <채식주의자>는 소설 속 인물들의 내밀한 독백까지 옮겨내지는 못했다. 세편의 중편소설이 화자를 바꿔가며 정상/비정상, 삶/죽음, 아름다움/추문의 경계를 탐색한 것에 비하면 영화의 구성은 헐겁고 밀도는 떨어진다. 영혜의 언니이자 민호의 아내인 지혜가 화자로 등장하는데, 그녀의 고통은 영화 속 영혜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말할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 없”다. 처제와 형부의 금기시된 사랑도 죄책감과 욕망이 어지럽게, 또 빈번히 교차하는 <파주>와 달리 죽음과 삶이라는 관념에 짓눌려 ‘그들만의’ 비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