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지붕 뚫고 하이킥!>은 걸작이다. 그 이유를 굳이 상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그저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처럼 지금 이 시대, 그리고 여기의 삶을 예리하고 정확하게, 하지만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내는 드라마나 영화가 요즘 있었나 싶기 때문이다. 최소한 난 최근 들어 인물들의 감정을 이토록 밀도있게 묘사한 멜로드라마를 만난 적이 없고, 이만큼 통쾌한 웃음을 주는 코미디를 접하지 못했으며, 세상의 단면을 이렇게 정교하게 도려낸 풍자극을 볼 수 없었다. 세경처럼 짠한 역할도, 정음처럼 사랑스런 인물도, 보석처럼 연민이 가는 캐릭터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지붕 뚫고 하이킥!>을 김병욱 감독 작품세계의 최절정이라고만 말하는 건 야박하게 느껴진다. 나는 <지붕 뚫고 하이킥!>, 그리고 김병욱 감독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행운으로 여긴다고 말하겠다. 설 합본호의 표지와 특집을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꾸민 건 <씨네21> 구성원의 생각도 나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아끼는 물건을 건네는 마음으로 합본호를 준비했다. 우리가 열렬히 사랑해 마지않는 이 시트콤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일이야말로 독자 여러분에 대한 최고의 설 선물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어쩌면 <씨네21>이 왜 영화가 아닌 TV 시트콤을 간판으로, 그것도 합본호의 얼굴로 내세웠냐고 따지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분들께는 우리가 그동안 영화 이외의 예술이나 사회적 이슈를 꾸준히 다뤄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드리고 싶다. 중요한 건 뛰어나냐 중요하냐 재미있냐 문제적이냐이지, 영화냐 방송이냐 연극이냐 음악이냐가 아니란 말이다. <씨네21>은 앞으로도 뛰어나고 중요하고 재미있고 문제적이라면 영화 이외의 그 무엇이라도 다룰 계획이다. 나는 오히려 이번 특집 준비과정에서 많은 한국 영화감독들이 <지붕 뚫고 하이킥!>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약간 충격받았다. 시간에 쪼들리고 다양한 압박감 속에서 살아가느라 어쩔 수 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만약 그들이 단지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한낱 TV 시트콤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을 외면했다면 “감독님 잘못하셨어요”라고 말하겠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본방과 재방을 사수하라고 권유하겠다. 나아가 <추노>나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도 권하고 싶다. 그건 한국영화가 시대의 공기를 끌어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자 대중의 정서를 읽는 가장 쉬운 수단일지도 모른다.
이번주부터 김경주 시인의 칼럼 ‘섬세함을 옹호하다’가 격주로 연재된다. 다양한 이미지를 풍성한 상상력과 서정성으로 읽어낼 예정이다. 전방위 예술가의 다채로운 상념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부디 맛있는 떡국과 두둑한 세뱃돈(또는 판돈), 그리고 가족의 평화가 깃든 설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