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를 혼내고 어린이집에 보내면 종일 마음이 안 좋다. 오늘 아침에는 급히 통장을 찾고 있는데 애는 애대로 햇볕이 쨍하니 선글라스를 끼겠다고 설쳤다. 정신이 사나워 큰소리를 냈다. 애는 기가 죽어 지난 여름 내가 선글라스 끼워준 사실을 들먹였다. 밥부터 빨리 먹으라고 했다. 그리곤 천천히 꼭꼭 씹어먹으라고 잔소리했다. 이거 완전 부모가 아이에게 해선 안되는 ‘이중구속’질이네. 두 가지 사인을 동시에 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신상태를 만드는. 다행히 아이는 빠른 입놀림으로 밥을 씹어삼키고 기어이 선글라스를 찾아 끼었다.
엄마가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대통령이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도 대단히 곤란하다. 대통령의 영국 <BBC> 회견 내용을 청와대 대변인이 일명 “마사지”해서 브리핑했다. “열린 마음으로 사전에 만나는 데 대한 조건이 없어야 한다.… 아마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본다”는 말을 “열린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내라도 안 만날 이유가 없다”로 바꿨다. 톤과 강도가 전혀 다르다. 민감한 대목이라 대통령에게 다시 물어 표현을 완화했다지만 명백한 왜곡이다. 그것도 곧바로 들통날. 안 그래도 홍보 목적으로만 기자회견을 이용하고, 원전 수주 같은 있어 보이는 사안은 보도를 통제해 효과를 부풀린 전적이 있다. 대통령의 복심을 제대로 읽은 건지 잘못 읽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언론과 여론을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만은 틀림없다.
앞서 두 대통령은 차치하고, 발음이 많이 샜던 그전 대통령 때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그의 단순한 발언이 새삼스럽다. 특히 단식 중인 야당 대표를 찾아가 “굶으면 죽는다”고 했던 그 명언. 캬). 리더의 생각과 발언이 일치하지 않을 때 이런 일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연일 외국 언론 인터뷰와 국무회의 등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주요하게 부각하지만 정작 대통령의 생각은 뭔지 잘 모르겠다. 조건없이 만나겠다고 하고는 돌아서서 “대가는 있을 수 없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바라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해 재를 뿌린다. 정상회담과 관련해 생각이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정상적으로 생각하시고 정상적으로 말씀(및 전달)하시고 부디 정상적으로 실천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