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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다이내믹한 장르영화를 보았나
김용언 2010-02-09

세계 유일 분단국가란 소재를 <의형제>는 어떻게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영리하게 풀어냈을까

2010년 한국영화계의 출발이 기분 좋다. <의형제>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현실에서 영리한 엔터테인먼트적 포지션을 취했고, 대중영화로서 흠잡을 데 없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장훈 감독과 이모개 촬영감독, 전문식 무술감독로부터 몇 가지 키워드와 궁금한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장님은 사람들이 돈으로만 보이세요?… 인간적으로 대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일에도 어려운 면은 있다고.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일이야.” 두 남자가 말다툼을 벌인다. 그 뒤로는 바다가 보이고 그 주변에 처진 철조망이 눈에 띈다. 명백한 은유. 남과 북의 불편한 공존이 희극적으로 펼쳐지는 <의형제> 속 한 장면이다.

두 남자가 달린다. 국정원에서 파면된 한규(송강호)와 북에서 버림받은 공작원 지원(강동원). 두 사람 모두 조국(과 가족과 사회적 정체성)으로부터 내동댕이쳐졌다. 아웃사이더들은 다시금 자신의 위치를 찾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서로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등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 감시와 추격의 리듬이 신기하다. 와일리 코요테와 로드 러너의 그것이 아니라, 톰과 제리의 그것이다. 직진 코스가 아니라 곁길로도 빠지고 꽃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도착 지점에 이르러 막판 스퍼트를 내는 그런 코스다. 비오는 야경을 보여주는 오프닝신은 누아르 같고,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벌어지는 중간 부분에선 코믹한 농촌스릴러와 은근한 첩보(라기보다는 탐색)물이 뒤섞이고, 후반부는 비장한 드라마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리고 마침내 함께 살아가는 법, 혹은 마음가짐을 모색한다. 두 남자는 그렇게 성장한다. 예상이 잘 안 된다고? 맞다. <의형제>는 모퉁이를 돌면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타입의 영화가 아니다. 5, 60년대 서구 영화들이 구 소련과 KGB를 강력한 타자로 상정한 채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쏟아냈듯, 현재의 할리우드가 중동 지역에서 쉽게 발을 빼지 못하듯, 2000년대 한국 영화계에는 북한이라는 타자에 남한 사회를 비춰보이며 무수한 소재를 발굴해왔다. 그 중에서도 <의형제>는 <쉬리>와 <태풍>과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블록버스터 공식과 격렬한 감정을 몰아치듯 밀어넣지 않고, <흑수선>과 <웰컴 투 동막골>처럼 따뜻한 화해와 휴머니즘에 집중하지 않는다. <이중간첩>과 <아이리스>처럼 국제적 첩보전의 상황을 무리하게 부각하지도 않는다. 이 모든 상황이 적당한 농도로 뒤섞이되, 고독한 언더커버 두 명이 내던져진 난처한 상황에서 빚어내는 세밀한 코미디와 비극적 현실이 덤덤한 희로애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다.

# 6년 전과 6년 뒤, 상반된 영화 톤

시작은 장민석 작가(<효자동 이발사> <가을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가 쓴 각본부터다. 장훈 감독은 ‘소재에 짓눌리지 않은 채 강박적이지 않게 인물들을 풀어가고 매듭짓는 장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가벼움이 지나치게 밝게만 보일까봐, 그리고 초반부의 비극적인 톤과 이후 급작스레 밝아지는 흐름의 꺾임이 근심스러웠다. 6년 전은 전형적인 누아르 톤이지만 6년 뒤부터 영화는 급격하게 화사하고 명랑해진다. 송강호의 어깨에선 힘이 빠지고, 지원의 얼굴에선 노여움이나 분노보다 엷은 미소가 자주 떠오른다. “각본을 처음 봤을 때 전반부, 중반후, 후반부가 전부 각기 재미있는데 전체적으로는 3등분이 뚝 잘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 차이를 중화시키는 게 목표였다.”(장훈) 한결같은 톤을 유지하자는 강박을 버린 채 상반된 톤을 리드미컬하게 조율함으로써 다른 느낌의 장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관건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달라진 태도를 보여주고 관객으로 하여금 태도를 바꿔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할까, 변화를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하려면 어떤 상황을 주어야 할까. 편집과 색채, 음악 전반에 걸쳐 그 강약을 조율해야 했다. 6년의 틈을 두고 벌어지는 상반된 분위기가 “신기하고 재밌었다”는 이모개 촬영감독(<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은, 촬영 당시에는 관객에게 시간의 흐름을 인지시키기 위해 그 차이를 훨씬 세게 강조했다고 한다. “6년 전에는 더 어두웠고, 6년 뒤는 지금보다 더 밝았다. 하지만 사운드가 입혀진 편집본으로 죽 보니까 그 차이가 너무 세더라고. 완성본은 색보정 작업을 거쳐 차이를 많이 죽인 편이다.”

# 한국 사회의 황량한 이면 포착

한국사회를 떠도는 ‘유령’을 보여주는 방식은 또 다른 고민이었다. 국내 외국인 100만명 시대, 이중에서도 동남아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와 결혼 이민자들은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사람처럼 취급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이는 <의형제>에서 가족을 다루는 방식과도 겹친다. 부재하지만 끊임없이 환기되는 가족의 존재는 한규와 지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큰 관건으로 작용한다). <의형제>는 국정원에서 파면당한 뒤 흥신소를 차린 한규와 정체를 감추고 한규 밑에서 일하는 지원의 일상을 통해 한국 곳곳에 분포한 이주노동자의 삶을 지그시 응시한다. 현상금 때문에 이주노동자와 가출한 외국인 아내를 찾으러 다니는 과정에서, 지원은 북한에선 버림받고 남한에선 언제나 관찰자이자 도망자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와 이들을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이주노동자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의 한축은 지원의 고뇌와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였던 셈이다. “실제로 한때 새터민 사이에선 영화에서처럼 ‘영국’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새터민에겐 남한에서 지내는 게 이주노동자의 삶과 비슷한 거다. 아예 모르는 나라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장훈) 하지만 장훈 감독은 이 부분에서 솔직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규와 지원이 베트남인들과 싸우는 장면에서 베트남인들을 조직폭력배처럼 그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맘에 걸린다. 한규와 지원의 감정 변화를 영화적으로 부각하기 위한 필요 때문에 그들을 대상화한 건 아닌가….” 그는 <의형제>의 모니터 시사 당시 반응에 놀랐다고도 했다. 베트남 여성 뚜이안이 동생과 재회하거나, 집 나간 외국인 아내가 돌아와 아이를 안고 있는 정서적 장면까지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외국인들을 큰 화면으로 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다. 뚜이안의 표정을 타이트하게 잡은 숏들이 있었지만 결국 최종 편집 단계에서 원경숏으로 대체했다. 국내 외국인의 감정과 느낌도 주인공들의 감정만큼 잘 전달하고 싶었는데, 모니터 반응을 보면 내 바람만큼 잘 안됐던 것 같다. 적정선에서 자르긴 했지만 여전히 아쉽다.”

# 살아 있는 동선과 액션 안무

<의형제>의 흥미로운 성취 중 하나는 실제 로케이션 촬영이 주는 굉장한 활력이다. 내부순환로 중 연희입체교차로, 남가좌동 주택가, 고속터미널, 동호대교 근처 한강공원, 종로의 허름한 뒷골목 등은 지금까지 한국영화가 보여준 적 없는 동선과 액션 안무를 가능케 하는 가능성이었으며, 서울의 현재를 생생하게 기록하는 일종의 다큐멘터리적 터치까지 품는다. “아파트는 가장 쉽게 많이 봤을 법한 아파트, 주택가도 가장 익숙한 다세대주택 골목길이어야 했다.”(장훈) “딱 보면 서울의 어디라는 걸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장소에서의 액션이 재밌을 것 같았다. 남들이 하지 않았던 장소를 선택함으로써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전문식, <타짜> <영화는 영화다> <아이리스>) “무척 다채로운 공간들이다. 외국 영화에서는 이런 공간들이 많이 나오는데, 한국에선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피해왔다.”(이모개) 결과적으로 총격신이나 추격신이 대로변이 아니라 시장통 좁은 길에서, 재개발과 재건축을 알리는 흉측한 플래카드가 펄럭거리는 골목길에서, 세명의 액션 동선을 짜기도 힘들 만큼 좁은 옥상에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서 벌어진다는 설정은 한국영화에서 최초로 목도하는 풍경이다. 굳이 비교한다면 ‘반드시 부산이어야만 했던’ 영화 <사생결단>의 핍진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이외 장소들도 지지 않고 존재감을 과시한다. <의형제>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이완의 순간을 맛보게 하는 시골길 풍경, ‘베트남인들의 낯선 스펙터클’을 안겨주는 인천 폐기물재활용공장 등을 떠올려보라. 이중 인천 공장 신은 축구를 보며 환호하는 이주민노동자 틈에서 오히려 한국인들이 고립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한규와 지원이 목도하는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차별과 학대를 확연하게 대비시킨다. “중소기업 공장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옥상에서 자기네 나라의 야채를 키워 음식을 만들어먹고, 밤만 되면 우르르 차를 몰고 놀러다닌다고 하더라. 그 얘기가 재미있게 느껴져서 사이즈를 살짝 키워 <의형제> 안에 넣었다. 밤시간대 텅 빈 공장에 모인 베트남인들을 통해. 그 시간만큼은 그들을 위한 그들만의 섬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장훈)

문제는 공간들이 간신히 섭외됐다 싶으면 여지없이 시간적 여유가 너무나 부족했다는 거다. 아파트 총격전으로 시작하여 남가좌동 주택가의 자동차 추격신으로 이어지는 흥분된 초반 액션 시퀀스는 딱 5일 안에 촬영을 마쳐야 했다. “처음 헌팅을 다녀와 준비했던 동선과 영화상 동선이 바뀌었다. 원래는 한규가 탄 차가 공사장 천막을 뚫고 나온 다음 자전거 타는 할아버지를 피해 차를 돌리다가 어느 건물 담벼락을 거의 뚫다시피 박은 다음 빠져나와 추적을 이어가는 장면이었다. 막상 헌팅 뒤 촬영하러 가니 그새 자동차가 박아야 하는 건물이 헐리고 없더라. (웃음) 재개발 구역이라 어쩔 수 없었다. 촬영하는 동안에도 옆에선 계속 건물을 부수며 촬영장쪽으로 다가오니 욕심은 났지만 5일 만에 끝내야 했다.”(전문식) “촬영 도중에 ‘오후엔 이쪽을 마저 부숴야 하니까 오전에 다 찍으라’는 통보가 오기도 했다. (웃음)”(장훈)

# 핸드헬드 카메라로 기이함 증폭

그리고 이 모든 시공간을 담아내는 것은 전부 핸드헬드 카메라다. 액션의 빠른 동선을 좇아 급박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핸드헬드도 그렇거니와 정지된 화면 혹은 클로즈업에서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메라는 이 리드미컬한 영화에 기이한 감흥을 더하며 관객의 긴장을 꽉 쥐고 놓지 않는다. 이모개 촬영감독은 어떤 면에선 쉽지 않은 화해에 천천히 다다르는 인물들의 감정의 스펙터클을 잡는 쪽을 더 어렵게 느끼기도 했다. <의형제> 클라이맥스인 추석 차례상 장면과 엔딩의 옥상 액션신이 좋은 예다. “차례상 장면의 경우, 처음에 전체 리허설을 하며 동선을 잡은 다음 본촬영에 들어갔다. 그때 강호 형이 리허설에 없던 동작을 했다. 동원이가 혼란스런 감정을 정리하고 돌아설 때 강호 형이 슥 하고 한번 더 쳐다본 거다. 그 느낌이 되게 좋았다. 배우들이 뭔가 다른 걸 하고 있을 때 카메라가 그 느낌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했다.” 옥상신에서도 움직이는 동작 자체보다 감정적 팽팽함을 포착하는 쪽에 주력했다. “공간을 크게 보여주기보다는 얼굴 클로즈업이 많이 들어갔다. 얼굴만 보고 있더라도 굉장히 많은 풍경이 보일 테니까. 처음 찍었을 땐 날씨가 흐려지는 바람에 그 분량을 쓰지 못했다. 두 번째 찍을 땐 처음의 혼란이 가신 상태로, 훨씬 정돈되었다. 감독님과 배우분들 모두 감정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특히 동원씨가 표현을 참 잘해주었다.”

본격 액션영화는 아니지만, <의형제>에서 임팩트있게 등장하는 네번의 액션 시퀀스는 전문식 무술감독의 노련한 손길을 거치며 활극의 스릴을 안겨준다. 그는 우선 두 주인공, 한규와 지원의 각기 다른 액션 스타일부터 잡아나가는 데 주력했다. 필살기를 완벽하게 습득한 북한 특수요원 지원을 연기하는 강동원의 경우, 키도 크고 손발도 긴 이 배우가 좁은 공간에서 얼마만큼 민첩하게 보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주요 컨셉은 스피드였다. 남들보다 반의 반 박자 정도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그리고 한방에 상대방을 기절시킬 수 있는 수기(手技) 액션에 초점을 맞췄다.” 반면 국정원 요원이었다가 흥신소 사장으로 위치를 옮기는 한규의 경우, 어느 정도 격투기 실력은 있지만 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몸도 불고 근육도 풀렸기 때문에 “동작은 큼직큼직하지만 옛날만큼은 몸이 잘 안 움직이는” 느낌의 동작들을 부여했다. 이 차이점은 두 사람이 베트남인들과 춤을 추듯 맞붙는 고속촬영 시퀀스에서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이모개 촬영감독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을 찍은 경험이 <의형제>의 선굵은 액션들을 포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난장판 액션을 찍는다면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세대는 셋업하고, 또 한번 셋업할 때마다 몇 가지 컷이 나올 수 있는지를 미리 계산하는 준비 과정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이 있을 수 없는 위치”에서 찍어야 하는 컷들도 무수했지 않은가. 초반 자동차 추격신을 보면 그야말로 미친 듯이 쪼개지는 무수한 컷 중에서 차 안의 배우들 바로 옆에서 찍은 듯한 클로즈업이 자주 눈에 띈다. “<본 얼티메이텀>인가, 그 영화의 메이킹을 보는데, 자동차 충돌신을 찍을 때 실린더를 이용하여 트랙인 또는 아웃하는 장비가 등장하더라.” 이모개 촬영감독은 이해영 감독의 <29년>을 준비할 당시, <놈놈놈> 때부터 호흡을 맞춰온 촬영 그립팀과 함께 그 비슷한 장비를 고안했다. “자동차 충돌신에서 줌을 당겨 찍는 것보다 그런 장비를 이용한다면 카메라로 마치 총을 쏘듯 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29년>이 무산되면서 그 장비는 자연스럽게 <의형제>에서 처음 선보였고, 결과적으로 차 안의 배우들이 느끼는 물리적 충격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만 같다.

<의형제>에 축적된 다양한 콘텍스트, 어찌보면 지나칠 만큼 매끄럽게 축조된 장르의 화법에 대해 개봉 이후 찬반논의가 쏟아져나올 것임은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이만큼 발랄한 대중영화의 호흡으로 (남북한 통틀어) 한국사회의 황량한 이면을 포착한 솜씨는 근작 가운데 보기 드문 미덕이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야기의 힘과 보여주기의 힘이 넉살좋게 착착 들어맞는다. ‘한국형’ 스파이물이자 ‘한국형’ 사회파 드라마의 영역을 부쩍 넓힌 <의형제>는 2010년 벽두에 느닷없이 등장한 기분좋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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