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형제>에서 송강호는 좀 많이 뛰어다닌다. 그가 맡은 국정원 요원 한규는 간첩을 잡으려 동분서주한다. 간첩을 놓친 탓에 국정원에서 퇴출당한 뒤로는 흥신소 사장으로 도망간 베트남 신부를 찾아 전국을 헤집는다. 사실 그에게는 간첩이든 베트남 신부든 잡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목표물이다. 그랬던 그가 적으로 만났지만, 외롭고 불쌍한 한 남자를 구하기 위해 다시 뛴다. <의형제>는 송강호의 육체성과 그의 달리기에 담긴 감정변화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영화다. 송강호 본인에게도 영화 속의 질주는 가장 힘든 촬영이었다. “물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웃음) 촬영기간이 지난여름 중에서도 가장 더운 기간이었는데, 특히 하이라이트 촬영은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에 있었다.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힘들더라.”

송강호가 자신의 몸을 혹사시킬수록 관객의 즐거움도 컸던 전력에 비추어볼 때, 그의 말은 <의형제>를 기대할 수 있는 힌트가 되기에 충분하다. 자연인 송강호는 몸을 움직이는 걸 귀찮게 여긴다고 하지만, 오히려 관객은 유독 영화 속의 송강호가 미친 듯이 뛰고, 싸우는 장면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범인을 잡고자 시골의 밤골목을 달리거나(<살인의 추억>), 딸을 구하고자 한강대교를 질주할 때(<괴물>), 송강호의 달리기에는 애타는 감정과 급박한 긴장이 모두 담겨 있었다. 아들을 찾겠다며 울며 뛰어다니던 <효자동 이발사>의 성한모도 빼놓을 수 없다. 굳이 바쁘게 살고 싶지 않은 이들이 극한의 상황을 맞아 전속력을 경험한다는 것이 영화들의 공통점이었고, 송강호는 그러한 움직임의 국면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묘사할 수 있는 배우였다. <놈놈놈>의 태구가 쉴새없이 뛰고 구르는 것이나, <박쥐>에서 신부 상현이 도심을 비행하는 것 또한 분명 송강호의 액션에 매력을 느낀 감독들의 욕망이 빚어낸 장면일 것이다.

<의형제>를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대목은 영화 속 한규가 지금껏 송강호에게서 본 다른 남자들과 많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과 조직에서 소외당했던 <우아한 세계>의 조폭 가장 인구, 직업상 가진 노하우와 두 다리로만 일했던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이념상 적일 수밖에 없는 남자와 우정을 맺게 된 <공동경비구역 JSA>의 오 중사가 한규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남자들이다. <쉬리>의 이장길 요원이 10년쯤 지나 결혼하고 아이를 갖게 되어 영화 속 대사처럼 “간첩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상당히 현실적인 남자다. 대단한 애국심으로 간첩을 잡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직업상 성실할 뿐이다. 퇴출 뒤에도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거고. 그런 점에서 전작들의 많은 남자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영화 속의 한규가 이미 많이 본 송강호라고 해서 변신의 필요성을 운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송강호가 가진 인간적이다, 소탈하다, 소시민 같다는 등의 수식어는 관객이 가장 사랑하는 송강호의 모습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본인 또한 다른 인물들과의 접점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물론 한규는 내가 가진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의 캐릭터다. 하지만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은 좋은 연기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시나리오상에서 적절한 연기를 하는 게 가장 좋은 연기이자 정답에 가까운 연기다.”

아마도 그의 새로운 얼굴은 다음 작품으로 내정된 <밤안개>를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직의 보스다. 한규와 달리 외형도 날카롭고 부인과의 멜로도 부각된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좀더 정적인 느낌의 연기가 필요할 것 같다.” 만약 <밤안개>의 송강호가 달리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할 필요도 없다. 달리거나, 달리지 않는 것이나 모두 그가 내놓은 정답의 연기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