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설명 하나만 정정하자.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더불어 세계 3대 SF작가로 손꼽히는 필립 K. 딕.” 이게 무슨 달나라 토끼가 반중력 우주선에서 초공간 점프하는 소리? 세계 3대 SF작가, 그러니까 SF 문학계의 빅 스리(Big 3)는 아시모프, 클라크, 그리고 로버트 하인라인이다. 여하튼 필립 K. 딕의 팬들이라면 온갖 영화평론가들이 영화화된 단편들만을 가지고 필립 K. 딕의 철학을 사유할 때 좀 배알이 꼴렸을 텐데, <매트릭스>를 비롯한 수많은 사이버펑크 개똥철학 영화들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유빅>의 출간은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무대는 (언제나 그렇듯이) 가까운 미래다. 시간여행이 가능하고 죽은 사람마저 ‘반생인’이라는 이름으로 생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다. 염력과 텔레파시도 이미 일상화됐다. 그러다보니 초능력자들에 의한 사생활 침해가 잦아졌고, 런사이터 어소시에이츠를 비롯한 여러 기업은 초능력을 무효화시킬 줄 아는 ‘관성자’들을 고용해 사생활 침해 방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열한명의 관성자들을 데리고 달로 떠난 런사이터 어소시에이츠의 대표 글렌 런사이터가 폭탄 테러로 사망하고, 주인공 조 칩은 이상한 메시지를 받는다. 달에서 죽은 것은 런사이터가 아니라 동행한 관성자들이라는 거다. 대체 누가 살아남은 것이고, 누가 죽은 것일까. 혹은, 삶과 죽음이라는 게 더이상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유빅>은 필립 K. 딕의 존재론적 문학실험의 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