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전집 붐이다. 출판사마다 다양한 기획의 문학전집을 선보이는 덕에 번역, 해설, 표지 등 원하는 대로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아졌다. 그중 전 9권의 창비세계문학 전집 세트는 단편소설만을 나라별로 묶어 펴냈다. 묵직한 느낌의 하드커버 책이 주는 인상은 어렸을 적 처음 어른들의 소설에 접근하는 문을 열어젖히던 순간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영국, 미국, 독일,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 프랑스, 중국, 일본, 폴란드, 러시아 단편소설이 제각기 한권씩에 담겨 소개되었는데, 주로 장편소설 중심으로 소개되는 (거장이라고 불리는) 해외 작가들의 역량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워낙 많아서 읽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이후 장편으로 발전되는 발상의 첫 순간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도 있으며, 폴란드와 중국의 단편집에서는 앞으로 더 알고 싶은 작가들을 새로 만날 수 있다. 2주일 동안 자기 전에 단편 하나씩 꺼내 읽는 재미가 커다란 초콜릿 상자를 비워가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기존에 출간된 번역본의 중역과 오역 문제를 바로잡았음을 자신하는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포함,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어떻게 왕부는 구원받았는가>, 스져춘의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이반 부닌의 <가벼운 숨결>처럼 몇번이고 읽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 많다. 작가 소개와 작품 안내, 더 읽을거리에 대한 안내는 기본. 한 가지 당부말씀. 천천히, 샅샅이 읽으시라(그래도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 12페이지가 이렇게 풍성하고 깊을 수도 있구나 하는 즐거운 놀람이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