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서학(西學)을 막기 위해 <한서> <논어> 등 중국 고전의 건조한 문체를 문장의 기본으로 삼는다. 일상을 다룬 감각적인 소설 문체는 무조건 안된단다. <한서>와 정조 사이에는 대략 1600년이라는 간극이 존재한다. 이미 북촌마님들이 연애소설에 목을 매고 행인들이 영웅소설을 들으려 거리를 메우는 시대라 타임머신 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을, 정조는 밀고 나갔다. 세상에, ‘빵꾸똥구’ 검열은 명함도 못 내밀겠다.
역사소설 <꾼>은 바로 정조의 문체 반정을 다룬다. 부제는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어느 누가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로 대세를 거스르는 정조의 쇠고집을 꺾을 것인지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꾼>은 사뭇 다른 노선을 택했다. 우선 임금의 명을 어기고 소설에 탐닉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소설 문체에 빠진 죄로 귀양 가는 성균관 유생, 몰래 대중소설 읽고 필사하는 일이 인생의 낙이 되어버린 대신의 딸, 심지어 이야기꾼이 되어 세상을 쥐락펴락할 야심을 품고 밑바닥을 전전하는 사내까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이들은 이야기의 쾌락 속으로 점점 빠져든다.
작가는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과 소설을 거부하는 정조, 둘 가운데 특별히 어느 편을 들지는 않는다. 이야기란 궁극적으로 “설움과 슬픔에 다치고 타인의 마음에 울어본 적이 있는” 사람을 위함인데, 정조 또한 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겪었고 절대 권력자로서 진득한 고독에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결국 정조도 가엾은 인간일 뿐이라는 이야기. 결론은, 꼬장꼬장한 나라님을 희롱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마음 놓고 좋아할 수 없었던 강퍅한 시절을 연민하는 이야기.
참고로 정조가 혐오하던 문체와 사랑하던 문체 모두 소설의 근간이다. 문학연구자 아우어바흐에 따르면 소설 스타일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처럼 각 장면이 눈앞에 떠오르도록 생생하게 묘사하는 스타일. 또 하나는 <구약성서>의 이삭 이야기처럼 신의 말씀을 전하는 최소의 문장만으로 간결하게 구성된 스타일. 거칠게 엮자면, 전자는 감각적 소설 문체고 후자는 금욕적 고전 문체. 둘이 하나로 융합되는 과정이 소설의 역사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