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지난해 가을 <무릎팍도사>를 보다가 마음이 찡했던 그였다. 안재욱의 팬심은 뮤지컬의 한류신화를 기원하는 모양이다. 공연이 열리는 유니버설아트센터 로비에는 안재욱의 아시아 팬들이 보낸 화환들로 가득했다. 멀리 한국의 공연장까지 찾은 열성 아줌마 팬도 여럿 봤다. 팬들의 기운을 팍팍 받은 안재욱의 연기와 노래는 감미로웠다. 대사 전달도 정확했다. 그의 부드럽고 달콤한 카리스마가 로맨틱한 뮤지컬과 잘 어울리는구나. 깜짝 놀랐다.
로맨틱한 뮤지컬이라고 해서 당황했나. 그렇다면 당신도 ‘잭 더 리퍼’에 좀 끌리는군요. 뮤지컬 <살인마 잭>은 19세기 말 런던의 미치광이 살인마 ‘잭 더 리퍼’를 불러낸다. 잭 더 리퍼는 영구미결 사건이다. 고로 우리가 아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모두 떠도는 소문일 뿐이다. 피해자가 모두 술집여자이며, 배를 갈라 장기를 꺼내고 다시 봉합하는 그의 범죄 스타일로 봐서 범인은 의사이지 않을까 추정하는 정도랄까. 뮤지컬 <살인마 잭>은 이 위에 멜로란 달콤한 외피를 입힌다.
결과는 로맨스가 강처럼 흘러 넘친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수사관 앤더슨과 창녀 폴리의 사랑은 극의 전개를 위한 억지춘향이며, 극의 중반 이후 <지킬 앤 하이드>가 떠오르는 순간 너무나 쉽게 반전을 예상했다. <지킬 앤 하이드>가 떠오른 이유? 스포일러라 자제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안재욱의 부드러움에 빠지면서도 결말에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범죄자를 스타로 만들어버린 미디어의 상업성을 꼬집은 각색이 이 뮤지컬을 완전히 아웃시키지는 않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잭 더 리퍼’란 인물에 이끌린 지극히 개인적인 상실감이다. 그러니 연인끼리나 동성친구끼리는 팔짱끼고 가서 보시라. 최강 로맨스다. 단 사랑에 눈멀어 뮤지컬넘버는 안 들리면 좋겠다. 음향 탓인지 계속 레코드판 튀듯 신경을 날카롭게 찌른다.
가스등이 비추는 어둡고 음습한 1888년 런던의 뒷골목. 무대세트는 장르는 다르지만 같은 소재를 다룬 조니 뎁 주연의 영화 <프롬 헬>을 연상시킨다. 허스키한 김원준의 목소리와 유준상의 시원한 발성도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