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네는 토론 끝에 그래서 가훈을 정했는지 모르겠다. 우리집 가훈은 오랫동안 ‘너나 잘해’였는데, 애가 등장한 뒤로는 ‘너만 잘해’로 바뀌었다. 심기일전하여 올해는 가훈을 손볼 작정이다. ‘적당히 하자’가 유력하다. 어느 날 취해서 들어온 아비에게 네살짜리 딸내미가 “적당히 마셔”라고 말한 뒤로 우리집 구성원들이 꽤 자주 쓰는 말이 됐거든.
연초부터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정부가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 계획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꾼 수정안을 드디어 발표해버렸다. 반대 여론을 의식해 기업, 과학, 교육 영역을 있는 대로 나열해놓았지만 결국 행정부처는 옮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하루가 멀다하고 급조한 방안들을 내놓는다. 세종시에 오는 대기업과 대학에는 용도나 계획을 정하지 않은 원형지를 헐값에 공급해 마음대로 개발할 수 있는 특혜를 주겠다고 했다. 다른 기업·혁신도시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자 그럼 그곳의 원형지도 헐값에 공급하겠단다. 막개발이든 난개발이든 뻥개발이든(그런다고 누가 오겠냐는 뜻의 세종시 관련 신조어) 입막음만 하겠다는 조급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터져나오는 둑을 이 주먹 저 주먹 다 끌어다 가까스로 막고서 물이 저절로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게다가 민간에게 강제수용한 땅을 민간(특히 기업)에 수용비보다 턱없이 싼값으로 주겠다니, 이럴 거면 정부가 나서 토지수용을 왜 했나. 수천억원 혹은 그 이상이 될 손실보전액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다. 이게 효율적이라는 거야? 나원 참.
정운찬 총리를 앉힐 때부터 예견한 일이지만, 설득도 양해도 사과도 없이 졸속 수정안을 내놓고는 원안 추진 요구를 간단히 “정치 논리”라고 일축하는 것에 이르면 어안이 벙벙하다. 물론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군대라도 동원해서 막고 싶다”고 했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해, 또 되고 난 뒤에도 수차례 약속했고, 불과 반년 전에도 “당초 계획대로 현재 진행 중이고, 나도 정부 마음대로 취소하고 변경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2009년 6월20일, 청와대 여야대표회동)던 도시 아니던가. 그 집 가훈도 바꿀 때가 됐나보다. 이 대통령네 가훈은 ‘정직’이란다. 하하하. 웃겨요. 적당히 하세요. 하여간 6월(지방선거)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