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은 지난 10년 동안 ‘과욕의 승부사’라 불렸다. 급변하는 영화산업의 지형도 안에서 그는 위험한 줄타기를 통해 영세 제작사가 대기업에 버금가는 파워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과욕의 승부사’라는 수사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면, 이는 강우석 감독이 아니라 신상옥 감독에게 돌아가야 옳고, 합당하다. 50년 전 신상옥 감독은 일찌감치 대량생산이 가능한 스튜디오 체제를 도입했고, 그가 만든 신필름의 무대는 전세계였다. 그렇다고 <영화제국 신필름>이 “난, 영화였다”던 신상옥 감독의 오만한 의지에 대한 탄복은 아니다. “남한, 북한, 홍콩, 미국에서 모두 영화를 만들어낸 유일한 영화인”이자 “그가 만든 어떤 영화도 그의 인생만 못했다”는 신상옥 감독의 삶에 대해 긍정하면서도, 저자는 ‘칭기즈칸’을 꿈꿨던 신상옥의 거대한 꿈이 영화산업 지형 내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또 종국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추적한다. 1959년부터 1975까지 신필름의 흥망성쇠를 시기별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감독인 동시에 제작자로서의 신상옥의 딜레마’를 깊숙이 파헤친 부분이 눈에 띄고, 당시 기사 등을 인용해 구조적인 모순에 처한 영화산업 안에서 신필름의 한계를 짚어낸 부분도 흥미롭다. 특히 신필름이 ‘신상옥이라는 개인 인격체의 연장’일 뿐인 1인 기업의 꼴을 탈피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영화제국 신필름’의 전성시대가 실제로는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지적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50년 뒤 벌어진 충무로 제작사들의 쇠락 또한 1인 기업 신필름의 쇠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필름은 종국에는 실패했기 때문에 오늘날 위대함으로 남았다”는 저자의 말을 바꾸면, 신필름의 위대함은 글로벌 기업이라는 목표가 아니라 그렇게 되지 못한 실패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