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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가장 ‘이나영스러운’ 변신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이나영

이나영은 부러 예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배우다. 비현실적인 외모는 그녀를 남과 다르게 해주는 장점이지만, 그녀는 늘 그 장점을 벗고 ‘일대일로 붙어보자’는 세찬 도전장을 내민다. 그녀로부터 이번에 건네받은 도전장은 남자 역할이다. 트랜스젠더로 삶을 시작한 29살의 여성. 해프닝 속, 반짝반짝 살아 있는 이나영의 연기가 드러난다.

욕심도 없고, 바쁘지도 않고, 잘 먹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은 여자. 아니 그럴 것 같은 사람. 이나영은 이상한 나라에 산다. 이나영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늘 신비롭고 미스터리하며 규정하기 힘들다. 보통의 ‘여배우’라는 틀거리로 묶으려고 해도 그녀의 긴 목과 팔다리는 범위를 벗어나는 듯, 쉬이 묶이지 않는다. “전 평범해요. 털털해요”라는 매번의 변명을 이나영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더라도, 광고 속 예쁜 이미지보다 캐릭터에 맞춘 내추럴한 모습을 화면에서 보여주더라도. 이나영은 다시 ‘신비한’ 이나영이라는 원점으로 팽그르르 돌아가버린다.

이 끊임없는 도돌이표에 대한 이나영 스스로의 제동걸기.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의 손지현은 배우 이나영의 아주 강력한 현실 안착기다. 29살의 현장스틸기사 손지현. 특수분장사 준서와 막 연애를 시작하려고 하고 개인전까지 준비 중인 평범한 여자이지만 실은 남자였던 과거가 있다. 트랜스젠더로 새 삶을 시작한 뒤, 존재를 모르던 아들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삶은 다시 과거에 얽매이게 된다. 이나영은 트랜스젠더로 여자의 삶을 사는 현재와 과거 남자였던 시절, 그리고 아들이 나타난 뒤 어쩔 수 없이 남장을 해야 하는 진퇴양난에 빠진 세 가지 모습을 수행한다. 지금껏 이나영을 감싸고 있던 신비를 망치로 두들겨 깨서라도 벗어버려야 29살, 현실의 고민을 짊어진 손지현과 접점을 찾을 법하다.

“만만치 않은 캐릭터다. 오죽하면 주위 분들 중 한 80%는 하지 말라고 만류하더라. 나 역시 수십번도 더 갈팡질팡했다.” 트랜스젠더 손지현은 ‘해라’라는 권유를 들으면, ‘해도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고, ‘하지 말라’라는 만류를 들으면, ‘왜 안되는데!’라는 오기가 발동하게 만드는 역할이었다. 감내해야 할 모험 때문에 쉽사리 발을 들이지는 못하면서도, 손지현은 그러니까 대본을 받아들면서부터 이나영이 어쩌면 마음속으로 깊이 사랑하게 된 캐릭터였다. “결정적으로 하게 된 건 장르가 코미디여서였다. 센 설정과 캐릭터지만, 굳이 이슈화할 수위로 접근하고 싶진 않았다. 정색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트랜스젠더의 진심을 알려줄 정도의 살짝의 안착. 그걸 원했던 거다.”

남장을 한 현재가 아닌, 남자였던 과거의 손지현. 이나영의 도전지점은 바로 영화 속, 그리 길지 않은 회상장면에 가 있었다. “케이트 블란쳇(<아임 낫 데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니, 너무 부러웠다. 물론 그녀는 밥 딜런의 제스처를 익힌 진짜 남자 역할을 했지만, 그 재연 자체가 경이로웠다.” 사실 남자로서의 이나영의 변신에만 초점을 둔다면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실망할 지점이 없지 않다. 여성성이 전제된 과거 남자 시절에 그녀의 동작과 모습은 남성보다 여성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돌아보니 매일매일이 선입견과의 싸움이었다. 그들도 똑같은 사람인데 우리가 너무 비쳐지는 모습에만 연연하고 있더라. 초반의 컨셉 대신 그냥 자연스럽게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남들은 ‘너무 이나영 같다’라고 하더라도 그냥 밀고 나갔다. 괜히 과장된 제스처로 선입견에 일조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이나영스러운’ 손지현이 완성되었다.

사실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는 위험한 수위의 소재를 조절해줄 완충장치가 제법 많은 영화다.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코믹한 면모를 가지고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손지현이 짊어진 현실의 심각성을 희석시킨다. 그래도 중심축은 언제나 손지현에게로 돌아온다. 말 그대로 원톱 영화의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진 영화였다. “막상 촬영 때는 잊어버렸는데 처음과 끝이 부담이더라. 처음엔 이걸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나고 나선 이거 손해는 안 봐야 하는데 하는 계산이 들더라. 영화 보니 내가 너무 많이 나온 거 아닌가 싶어 걱정된다. (웃음)”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녀는 이제 십년을 훌쩍 넘긴 경력의 배우다. “사실 십년 동안의 연기에 대한 자각은 없는 편이다. 그냥 늘 새롭고 늘 어렵다. 요즘은 연기가 줄타기 같단 생각이 든다. 알아야 하지만, 노련해져서는 안되는 게 이 직업이다. 갈수록 너무 어렵다. 나를 갉아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까.”

누구나의 바람처럼, 그녀 역시 끊이지 않는 작품에 목마르다. “나이를 생각하며 살진 않는다. 올해 과연 이 영화 한편을, 드라마 한편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실질적인 질문들이 더 와닿는다. 올해의 스케줄이 한해를 결정하는 거니까.” 지난해 화장품 모델로 10주년을 기념할 만큼 장수모델로 자리하며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동안, 연기자로서의 필모그래피 역시 차곡차곡 쌓였다. ‘이나영’의 전염도는 워낙 강력해 그녀는 늘 전형성이 끼어들 틈 없는 독특한 연기를 선사해주었다. 이른바, 캐릭터를 해부하기보다 늘 스스로 캐릭터가 되어버리는 방식. “삐끗거림이 항상 있다. 매번 감독님이랑 미친 듯 격렬하게 그 인물을 토론하고 싸워서 나에게 당의성을 주는 거다. 그래야 관객을 꼬일 수 있다. 그래야 나 이래서, 이렇게 이 사람을 표현했다고 당당해질 수 있는 거다.” 관객이 29살의 손지현을 보고도, 결국 ‘이나영’으로 도돌이표를 찍게 되더라도 스크린 속 그 순간, 손지현이 아니지 않았음을, 이나영의 손지현이 현실적이었음을, 이나영은 지금 그래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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