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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표면의 아름다움에 혹하다

버라이어티 토크쇼에 가까운 <여배우들>

이미지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해변의 여인>의 김중래처럼 종이에 점을 찍어 선으로 연결할 수도 있고, 점이 있는 공간을 접어 그 점이 내부에 있는지 외부에 있는지를 구분하거나, 혹은 그 경계선인 주름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입체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영화 만들기’, 혹은 ‘이미지 구성’을 이렇듯 점찍기로 환원한다면 대부분 영화는 2차원보다는 3차원에서 진행되고, 이 이미지의 점이 특정 공간에 밀집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관습적 장르로 불리기도 하며, 친숙한 스토리텔링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런 점과 선, 평면과 평면의 변형을 통한 이야기를 영화읽기라 칭하자.

흔들리는 카메라라는 유행, 혹은 패션

이제 영화라는 공간에 흩뿌려진 점-이미지들에 대해 상상할 차례다. 내면적이고 외면적인 이미지들, 점이 놓인 평면을 마치 종이부채를 접듯 구불하게 만들어 공간을 채운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문제는 다만 우리의 일상, 영화 속 일상을 비추는 우리 일상에 변수가 많아서 이를 순전히 평면 혹은 접기를 통해서만 드러낸다면 개개인이 놓칠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진다는 우려다(경험적 영화읽기). 설혹 누군가가 작가의 의도를 전부 잇는다 하더라도 주름이 방대해져 결국 전체적 형체 구분은 어려울 것이다. 모든 걸 설명하려는 두터운 논문처럼 이는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뭉개지기도 쉽다. 그러니 우리는 더 광활하지만 더 단순한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한다. 3차원상에 이미지의 점들을 그대로 놓아두고, 이를 평면이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로 상정하자. 즉, 이미지가 찍힌 공간을 풍선으로 덮고 그 속을 빡빡한 밀도로 채운 뒤 거꾸로 영화 속 이미지의 점들을 찾아내는 반대의 경로로 따르자. 이때 한편의 영화는 마치 한 덩이의 수박과도 같다. 내적인, 외적인 이미지의 수박씨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 못 박힌다. 그리고 영화를 읽는 사람은 손에 칼을 든 자들이다. 그들이 씨를 도려내려 칼을 꽂으면 수박은 쩍 소리를 내며 자신의 본질을 드러낸다. 잘 익었는지 아닌지, 혹은 씨가 너무 많지 않은지가 그제야 판가름난다. 간혹 영화읽기가 협소한 것은 너무 구석을 잘랐거나 아님 전체적으로 잘 익지 않았는데 익은 면만을 살핀 경우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그렇다면 이재용의 신작 <여배우들>은 어떤 영화일까? 잘 익은 수박에 가까울까, 아니면 부피가 작은 멜론일까?

패션화보 촬영현장, 이건 어디선가 봄직한데 대부분이 경험하지 못한 그런 유의 장소다. 이곳에 누구나 짐작하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하는 대한민국 여배우 6명이 모인다. 여자들의 이상향 민희, 우유에서 막 빠져나온 옥빈, 영국 여왕을 보여주는 여정과 한국보다는 오히려 프랑스 여인처럼 보이는 미숙, 거기에 다이아몬드 지우와 스피츠베르겐 섬에서 와인이나 마실 것 같은 현정이 가세한다. 이런 세팅은 흡사 로버트 알트먼의 94년작 <패션쇼>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고 보니 이 두 영화는 무척이나 닮았다. 다만 15년간의 시류를 타고 영화적 표현이 달라진 것을 <여배우들>이 반영한다는 점이 다르고, 이 영화가 버라이어티 토크쇼에 가깝다면 <패션쇼>가 시사 풍자 코미디에 가깝다는 점 정도가 다르다.

시작은 이렇다. <패션쇼>가 셰어나 장 폴 고티에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성을 확보했다면 <여배우들>은 고현정이나 이미숙의 사생활 중 대중에게 알려진 부분을 보여주며 심리적 사실성을 확보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알트먼이 구도적이고 안정적인 화면을 선호하는 데 반해 이재용은 시종 흔들리는 앵글을 구사한다. 실제 화보 촬영장인 양 배우들을 쫓아가는 서너대의 카메라에 현실적 대사가 겹친다. 이런 형식의 극영화는 드물지 않다. 로랑 캉테의 <교실>은 연출된 상황인지조차 의아할 정도로 학생들의 생생한 표정을 담았고, <디스트릭트9>에서의 뉴스장면과 <붉은 거리>의 감시카메라는 극적 사실감을 높였다. 이들은 모두 현실을 증명하는 장치를 가미한 뒤 거기에 핸드헬드를 덧붙인 경우다. 유행처럼 번진 이 카메라의 움직임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1995년의 ‘도그마 선언’이 그 흐름을 가속화했다고 보는 편이 가장 설득력있다. 이는 처음에 지나치게 의식적인 듯 보였다. 과도하게 부분에 집중했고, 영화의 본질보다 감독 스스로 자기가 만든 항목들에 열광하는 듯했다. 하지만 단호히 말해 최근 10년간 카메라 움직임에 도그마 선언만큼 큰 영향을 끼친 운동은 없다. 95년의 그 선동자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들은 극영화의 화면 흐름을 바꾸었고, 만일 영화에 ‘유행’이란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들은 패션 리더인 셈이다.

진짜보다 그럴듯한 것들

마지막 장면 때문에도 <패션쇼>는 풍자 코미디극에 비견된다. 하지만 <여배우들>은 오히려 버라이어티 토크쇼에 가까운데, 이는 15년간 진행된 TV쇼의 변화를 수용한 결과다. 방송의 디지털화는 ‘다채널, 유료화, 양방향성, 방송과 통신의 융합, 수용자 개념의 변화’의 조건을 수용하며 차례로 이루어졌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누구나 방송 내용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됐고, 따라서 방송은 자체의 질적 변화 시기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의 취향이 바뀌었다. 완전하진 않지만 불완전한 양방향성을 통해 방송사와 시청자가 타협한 것이다. 그 공통분모에 ‘리얼리티쇼’가 있다. 방송사는 일대일 소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시청자 의견을 수용하는 쪽의 포즈를 취했고, 그 속에서 배우들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감쌌던 포장을 내려놓거나, 혹은 그러는 척해야 했다. 꽤 모던한 개념이다. 알트먼이 의상을 벗긴 개념적 패션쇼를 감행해야 했다면 이제 이재용은 내면의 벗기기에 치중한다. 극중 인물들은 실제 자신의 이혼 사실에 대해 떠들고, 평소에 ‘그런 척’했던 가식의 순간들에 대해 쿨하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 아니고 다만 ‘보이는 바 그럴듯하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 표피가 의미의 재생산을 추구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현대적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쇼프로 근성의 소모성 이벤트라 단정할 순 없다. 이 외면적 모더니티를 바탕으로 영화는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흐른다. 이 바깥을 훑는 시선은 일관적이다. 아무리 배우가 진실한 심경을 이야기한다 해도 그것을 100% 현실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배우들>에서 가장 뭉클한 장면이 이혼을 말하며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라 화보가 완성된 시점인 것이 흥미롭다. 호기심 충족 과정을 넘어 직업으로서의 ‘여배우’가 완성될 때 감정은 비로소 온전하게 충만해진다. 현실의 인지보다는 역설에 가까운 이 경험은, ‘오, 사랑’이 울려퍼질 때의 따스함, 그리고 현실과 별개인 화보의 컷들을 따라 점차 넓게 퍼져간다. 실제의 이미지가 아무리 차용, 혹은 오독되더라도 영화의 표면이 훼손되는 일은 거의 없다. 거울을 닦으며 호들갑 떠는 지우의 시퀀스가 실제 그녀의 성격인지 아닌지 역시 헷갈린다. 그리고 정작 중요하지도 않다. 내적 심정은 옳고 그름이 아닌 취향의 호불호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배우들>에서 감동적 순간은 그녀들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다. 누구나 한달에 한번쯤은 커피로 점심을 때우고 싶은 날이 있다. 배부르지는 않지만 만족스런 식사,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고 당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영화 역시 그런 유의 영화다. 동일한 방식으로, 누구나 가끔 아름다워지고 싶어 한다. 언제나 화장을 하고 집 앞을 나서는, 굳이 여배우가 아니더라도 남성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영화의 부피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짓자. 어떤 과일에 가까울까? 레몬, 혹은 그의 슬라이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후자에 가깝다. 그리고 심지어 납작한 종이처럼도 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미지의 점들이 깊이를 잊은 채 나란히 찍혀갔다. 가볍게 팔랑이는 분홍색 종이에 대한 심상. 그럼에도 그 균등한 높이의 점들이 묘하게도 즐겁다. 생각해보니 ‘세상에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배우가 있다’는 영화의 전제가 이런 말을 뜻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항상 표면을 살고 그래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가끔은 그러하고 싶다. 분명 여성은 (남성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여배우들이 있다. 그들은 항상 그런 (표면적 주름과 같은)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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