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행 비행기표가 몹시 필요하다 지수 ★★★★★ 문화적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재밌다 지수 ★★★★
80년대, 비자를 얻기가 힘들 뿐 아니라 해외여행 자체가 미션 임파서블이라 뉴욕이 달처럼 멀어 보이던 시절. 미국 유학을 다녀온 선생은 그곳이 얼마나 위험하며, 뉴욕의 지옥도를 묘사한 영화들이 얼마나 리얼리티를 담고 있는가를 이야기했다. 잘못 들어선 골목에서 옷과 구두를 빼앗기는 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었고, 맞게 들어선 길에서 차창을 부수고 가방을 낚아채 도망가는 강도를 만나는 일도 있을 법한 일상적 사건이었다. 애덤 고프닉 식으로 말하면,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뉴욕은 지옥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지옥계가 1단계부터 30단계까지 바로 밑에 있는 것처럼 맨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정신병자들의 콧구멍을 채워주는 식으로, 모든 영화가 뉴욕을 지옥으로 묘사했다.”
<파리에서 달까지>를 통해 ‘문청 버전의’ 빌 브라이슨 같은 이미지를 안긴 애덤 고프닉의 <뉴요커, 뉴욕을 읽다>가 출간되었다. 그의 조부모는 엘리스 아일랜드를 통해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들이었다. 그는 성인이 되어 뉴욕에 자리를 잡았고, <뉴요커>에 글을 기고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몇년간의 파리 생활을 담은 에세이집 <파리에서 달까지>로 호평받은 뒤 귀국한 그의 관심이 뉴욕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여튼, 말끔해진 뉴욕이 재미없어졌다는 건 “좌익과 우익을 막론하고” 공감하는 당혹감이고, 시민의식과 평화라는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활력과 다양성이란 창조적인 면을 상실해 그 성과가 상쇄되고 말았다는 데서 생겨난 불만이지만 결국 그 모든 우여곡절이 뉴욕 그 자체임을, 애덤 고프닉은 다양한 인물과 지리적 구획을 따라가며 이야기한다. 너무 힘든 나머지 미국 드라마에서 우스갯거리가 되곤 하는 뉴욕의 집 구하기부터, 뉴욕의 문학계와 정신분석의들, 과거를 짐짝처럼 치워버리는 도시에서조차 매번 새롭게 반하는 뮤지션 빌 에반스, 당연하게도 9·11과 백화점, 요리, 타임스스퀘어…. 한편으로는 뉴욕이라는 도시의 매혹도 새삼 느끼게 된다. 내가 사는 도시가 아닌데도 이렇게 공유할 추억이 많다니. 누가 대중문화의 영원한 주인공 뉴욕 아니랄까봐,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