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자? 시시하지 않니? 가족들과 ‘가훈토론’을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의 숙제 때문이었다. 각자 가훈을 정해와 수업시간에 발표한다고 했다. 딸에게 먼저 의견을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더니 “한번 쏟아부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가 어떠냐고 한다. 그냥 그 말이 좋단다. “이 바보야, 그건 가훈으로 적당하지 않아” 했더니 “바르게 살자… 착하게 살자” 따위를 낸다. 딸보다 세살 많은 아들은 성스럽게 “범사에 감사하라”로 하잔다. 반응이 썰렁하자 “욕하지 말자”로 바꾼다. 나는 너무 뻔해 보인다며, 이왕 할 바에는 재밌고 튀는 게 눈길을 끈다고 말했다. 그런 뒤 즉흥적으로 “에라 모르겠다”를 내놓았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눈치보지 않는 도전정신을 담았다는 설명을 했다. 딸은 “그건 될 대로 되라는 뜻 아니냐”고 했다. 나는 ‘모험정신’이라고 반박했다. 더불어 그 전제가 돼야 할 가훈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자기 앞가림을 하자”였다. 제멋대로 하더라도 딴사람에게(특히 아빠 엄마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는 의미였다. 딸은 아빠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결국 내 제안을 끝까지 묵살했다.
2010년이 밝았다. 새해의 포부나 계획을 떠올릴 때다. 2년 전 요맘때 신문을 만들며 ‘50인의 신년설계’라는 제목으로 기획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참여한 어느 여성인사는(한국에서 가장 씩씩하게 열심히 살기로 유명한) “책 100권 읽기에 도전하겠다”고 썼다. 훌륭하고 본때난다. 한데 “그런 목표 아래 사는 건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신년계획이란 건 대개 진취적이게 마련이다. 그런데 혹시 앞의 가훈 같은 슬로건은 안되는 걸까. “2010년엔… 에라 모르겠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지르며 살자”쯤 되겠다. 나이가 들수록 “에라 모르겠다”는 말을 내뱉기가 힘들다. 철이 들지 말아야 한다. 철들기보다 철 안 들기가 더 어려운 세상이다.
철이 안 든 대표적인 어른으로는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를 꼽을 만하다. 최근에 그의 책 <죽기 위해 사는 법>을 읽었다. 1993년 불의의 교통사고 직후 병원에서 여러 단상을 정리한 내용이다. 그의 책은 이상하다. 어떤 부분에선 인생에 대한 진한 통찰이 느껴지는데, 또 어떤 부분에선 어처구니가 없다. 윤리적인 말을 쏟아내다가 비윤리적인 걸 옹호하고, 평화주의자처럼 행세하다가 전쟁론자 티를 낸다. 한 지인은 “책의 반은 헛소리”라는 극언까지 했는데, 또 누군가는 “헛소리조차 귀엽다”고 한다. “에라 모르겠다”는 자세로 글을 마구 휘갈긴 건 아닐까? 아니다. 그는 천재다. 천재라서 불균질하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재밌으면 그만이지”라며 책을 덮었다. 내가 무책임하고 불건전한 걸까? 거참, 2010년 벽두부터… 에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