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nopsis 세상에 종말이 왔다. 온통 잿빛 풍경이다. 식량은 바닥났고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며 죽이거나 죽는다. 아버지(비고 모르텐슨)와 어린 아들(코디 스미스 맥피)은 지금 필사적으로 남쪽을 향해 가고 있다. 그곳이 무엇을 약속하는 땅인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가야 한다. 한순간도 쉽지 않다. 사람을 뜯어먹는 잔인한 무리를 만나는가 하면, 먹을 것이 풍부한 지하 대피소를 발견한다 해도 안전을 위해 곧 떠나야 한다. 아들을 지키는 단 한 사람, 아버지의 몸이 점점 쇠약해진다.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영화로 옮겼다는데 얼마나 성공적일까.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존 힐콧이라는 다소 생소한, 유명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많이 만들어온 감독이 이 작품을 연출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아버지의 역할에 비고 모르텐슨을 기용한 건 너무 정답처럼 보여서 매력이 떨어지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아들을 맡은 코디 스미스 맥피도 좋다. 샤를리즈 테론의 역할은 연기에서 큰 비중이 없고 로버트 듀발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변신의 천재로 알려진 것처럼 정말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다. 가이 피어스가 마지막에 등장하는데 인물로서만 중요하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더 로드>는 아들과 아버지 두 인물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이 스쳐지나가는 죽은 풍경과 갑작스럽게 출몰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그때 나타난 사람이 식인 무리이거나 선량한 사람이거나 상관없이 죽고 죽이는 관계만이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에 대한 절망의 이야기다. 영화는 대체로 원작을 따랐으나 라스트신에서 희망의 강도를 약간 높였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두고 원작만큼 뛰어나지 못하니 형편없다고 말하는 건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코맥 매카시의 원작을 영화화한 모든 작품에 원작만큼의 수준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영화 <더 로드>는 원작을 읽은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조금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절망감으로 가득 찬 세상의 그림을 대중적 수준에서 그려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소설의 집요한 질문을 옮겨내지는 못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가령 “우리는 착한 사람인가요?”라는, 원치 않는 적대감과 잔인함을 경험하면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는 질문은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중요하지만 소설에서 더 필사적으로 느껴진다. 다만, 원작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즐길 만한 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