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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관객을 만나다-베를린] <박쥐>엔 한국적 키치가 없네

지난 10월 중순 독일에서도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개봉했다. <슈피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 유력 언론들은 큰 관심을 기울였는데, 가령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박쥐>를 “멜랑콜리하고 시적인 영화”로 <슈피겔>은 박찬욱 감독을 “난센스의 미학가”라고 평했다. 12월에 접어들었는데도 베를린에서 가장 트렌디한 세련됨과 대안문화가 공존하는 동네 하케셰마크의 소규모 아트하우스 영화관 센트롤(Central)에서는 <박쥐>가 여전히 상영 중이다. 12월의 추운 밤, 극장을 나오는 남성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자기소개를 해달라. =나이는 34살이고 이름은 요한 호프만이다. 작은 마케팅 회사를 운영한다. 그리고 온라인 영화 신문에 프리랜서 영화기자로도 활동 중이다.

-그럼 영화를 자주 보러 다니겠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영화관에 간다. 집에 블루레이 플레이어가 있어서 다른 일이 없으면 거의 매일 영화 한편씩 본다. <박쥐>는 친구의 추천으로 보게 됐다. 지난여름 베를린 판타지영화제에 출품된 이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 주제가 무척 흥미롭다며 나에게 꼭 보라고 권하더라.

-영화가 어땠나. =아주 마음에 들었다. <박쥐>엔 한국적인 키치가 들어 있지 않아서 좋았다.

-한국적 키치라니 무슨 말인가. =나는 영화광인데 한국영화도 많이 본다. 독일영화보다 한국영화가 내 코드에 더 맞는다. 그런데 한국영화를 보면 너무 애국적인 데가 있지 않나. 너무 키치가 과하면 안된다. 그래도 <박쥐> 정도의 키치는 괜찮다.

-그럼 다른 점에서 마음에 든 부분은 뭔가. =다른 뱀파이어영화와 차별되는 특별한 줄거리가 좋다. 주제도 흥미롭다. 뱀파이어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나 할까. 영화 내러티브의 배경에 개연성이 있다. 가령 바이러스에 감염돼 뱀파이어가 된다는 설정도 그럴듯하다. 박찬욱 영화에 나오는 폭력들은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숨기지도 않는, 딱 사실적인 정도의 폭력만 보여준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든다. 독일영화나 미국영화는 보통 너무 과장되거나, 폭력장면을 아예 보여주지 않거나 하지 않나. 그 밖에도 시퀀스가 미적으로 아름답다. 아주 잘 찍은 사진들을 배열한 듯 멋있다.

-인상에 남는 장면은 뭔가. =여주인공이 햇빛에 타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지막 장면과 여주인공도 뱀파이어가 되어 고공에서 자유자재로 뛰어내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선 신이 나서 나도 함께 휙휙 날아다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또 보통 한국영화에선 볼 수 없는 놀라운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주인공이 여신도를 강간하는 장면이다. 남자주인공은 사람들이 자신을 증오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그런 척한 것 같다. 한국영화를 많이 봤지만 그런 장면은 별로 없다. 에로틱하다기보다는 보는 게 고통스럽다. 그런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여주인공의 변화도 흥미롭다. 처음엔 수줍고 말이 없는 여성이었는데 뱀파이어가 되고 나서 생기있고 본능에 충실한 동물처럼 변한다. 배우 김옥빈도 예쁘고 매력적이어서 맘에 들었다. 애인이 없다면 한번 사귀어보고 싶을 정도로. (웃음)

-그나저나 오늘 <박쥐>를 보면서 독일 관객이 유난히 많이 웃던데.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 코미디에 웃었을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끔찍하고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웃기도 한다는데, 몇몇 독일 사람들 역시 그러나보다.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 =인간다움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인 것 같다. 남자주인공이 사람들을 해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여러 장면에서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아까 한국영화 팬이라고 했는데 그 밖에 뭘 또 재밌게 봤나. =한국영화는 꼭 DVD를 구해 집에서 본다.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을 아주 좋아한다. 그 밖에도 <타짜> <쉬리> <올드보이> <과속스캔들> <미녀는 괴로워> 등을 재밌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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