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 로베르 브레송 <아마도 악마가> 관람자: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재벌에겐 사면을, 노조원에게는 가압류를. 혹독한 겨울이다. 지난 12월28일부터 29일 이틀간은 이명박 정부의 두 얼굴을 극명하게 드러낸 시간이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 10월 쌍용자동차 해고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폭력시위 때문에 경찰이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제기, 쌍용차 노조원들의 퇴직금 및 체불 임금과 부동산 가압류 신청을 냈다. 12월28일 법원이 이를 일부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압류된 부동산 및 채권은 9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쌍용차 사쪽의 방만한 경영으로 파국에 이르렀던 지난 여름의 쌍용차 사태의 책임은 마지막까지도 노조원들에게만 강요되고 있다. 당시 사쪽과 경찰의 무자비한 탄압과 교묘한 노노 갈등 조장 때문에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던 노조 간부의 부인 역시 그렇게 쉽게 잊혀졌다.
한편 탈세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면권 적용으로 특별사면되었다. 단독사면은 경제인으로서는 처음이고, ‘KAL기 폭파사건’의 김현희씨 이후로도 19년 만의 일이다. 법무부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 전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와 IOC 위원으로서 자격을 회복해 지원 활동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단다. 그동안 그렇게 법치 타령을 하더니, 올림픽 앞에서는 법이고 뭐고 다 무시해도 되나보다. 공정한 경쟁으로 진정한 승자를 가리는(혹은 그렇다고 하는) 올림픽 정신에 처음부터 위배되는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버스 안에서 덜컹거리는 와중에 낯선 승객끼리 처음 대화를 나눈다. “왜 이렇게 세상이 엉망일까요.” “아마도 악마 때문인 것 같습니다.” 로베르 브레송의 <아마도 악마가>의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남부럽지 않은 ‘기독교 국가’ 한국에도 악마의 힘이 뻗쳐 있는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