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 진실한 인생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전기(傳記)이자 이야기라고. 그런데 자기 인생 이야기가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사실 자기 인생이 자랑스러운 사람보다는 과거를 바꾸고픈 욕망과 진실이 선사하는 압박감 사이에서 위태롭게 사는 사람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오즈의 닥터>는 억지로 상담을 받게 된 세계사 선생님 김종수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소설 초반부는 다소 의아한데, 요란하되 익숙한 이미지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상담의사인 닥터 팽은 검은색 홈드레스를 입고서 치맛자락을 들어 털난 종아리를 과시하는가 하면, 파이프 담배를 물고 프로이트 흉내도 내는 괴짜 중년남. 닥터 팽이 해외 게이 퍼레이드에 나올 법한 이미지로 뭉쳐진 캐릭터라면 주인공 김종수는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고생 많이 한 주인공이다. 그는 폭력을 휘두르는 무능한 아버지와 스포츠 댄서를 꿈꾸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누나 아래서 힘겹게 성장했다. 또 김종수를 사모하는 모범생 정수연은 어떤가. 기계적으로 모의고사 치는 일이 괴롭다는 여고생이니 신선한 조연은 못 된다. 김종수는 신문에서 본 ‘보험금을 타려고 강도로 위장해 어머니를 찔러 죽인 아들’ 사건 같은 뉴스를 잘 기억한다고 고백하는데, 바로 그런 신문 사회면과 소설의 첫인상은 유사하다.
그러나 상담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단서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이야기는 슬며시 가면을 벗어던지고 빠르게 달려나간다. 시원시원한 전개 덕분에 몰입도 잘된다. 환상소설에 조금이라도 익숙하다면, 반전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으리라. 결말에 이르면 이 익숙한 이미지와 설정이 필수 불가결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자신의 과거를, 인생 이야기를 거부하고 싶었던 자의 내면을 추적하기 위해 고안한 정교한 장치였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인생을 거부한다 한들 그 인생은 사라지지 않는다. 프로이트가 그랬다. 기억이 비록 의식의 표면 위에서 지워져 있다 해도 무의식 층에는 모든 흔적이 보관되어 있다고. 진실이 그토록 집요하게 쫓아오니 선택지는 하나다. 진실을 인정하고, 자기 인생 이야기를 받아들일 것. 물론 자기 인생을 진지하게 고찰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