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는 사랑이다. 일주일 전, 아이폰을 만져보고는 그 아이를 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 이후 사고 싶어서 잠을 설치고 있다(지금 쓰는 휴대폰의 노예계약이 꽤 남아 있다). 복잡한 기계는 딱 질색이고, 심지어 게임조차 어려워서 하지 않는 인간인데, 이건 달랐다. 글로 읽고 사진과 동영상으로 봤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걸 만져보지 않고 안다고 하는 자들이여, 물렀거라. 단점이 많은 기계인 걸 몰라서는 아니다. 배터리 교체 불가라는 말의 무서움도 알고 있다. 여기저기 만지고 주물럭대면 ‘조루’소리 듣는 배터리가 훨씬 빨리 닳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런데 어쩌라고. 만지는 순간 사랑에 빠졌는데.
만져보면 알 수 있다.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인간관계가 특히 그렇다. 싫으면 만지기는커녕 마주하기조차 싫다. 쩝쩝거리고 소리내 밥 먹는 것만 봐도 토할 지경이다. 한 인간의 존재 자체가 견딜 수 없는 노이즈로 다가온다. 성추행과 작업의 차이도, 너무 미묘해서 유감스럽지만, 터치에 반응하는 상대의 감정상태가 가장 결정적이다. 어디까지 만져도 되느냐, 가 아니라 당신이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냐, 가 중요하다. 터치만큼이나 그 터치에 대한 반응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어떻게 감응하느냐.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서 그 감응의 문제는 언제까지건 무너질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던 게 사실이고, 아이폰은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나온 (일반인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가격대의) 기계 중 가장 터치감이 좋은 물건이다. 반응 속도가 빠른 것은 물론이고, 내가 원하는 기능을 모아 다른 사람의 그것과 다른 물건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이폰 배터리 교체 불가가 문제인 이유는 그것이다. 조루라서가 아니라, 방전될 때까지 만지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에로틱한 물건 같으니.
세상은 점점 안 좋아지고, 인간은 변치 않는데, 기계만 좋아지고 있다. 그것도 인간이 쫓아갈 수 없는 속도로.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고, 그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족스럽게 네트워킹할 수 있다. 인간관계보다 더 편리하다. 무엇보다도, 진짜 터치없이 살 수 있게 해준다. 스마트폰만의 문제는 아니다. 벌써 몇년째 만나기 싫지만 관계를 끊기 애매한 사람들과는 어정쩡한 ‘전체 메일’이나 ‘전체 문자’로 명절에 기념 인사를 주고받고, 직접 말로 하기 힘든 부탁은 메신저로 한다. 싫은 사람뿐이 아니다. 보고 싶은 사람과도 문자질, 메신저질로 때워 버릇해 몇달이 가도록 얼굴 한번 못 보고도 근황을 꿰고 있는 일이 발생한다. 누구와 누가 싸웠다는 소식은 블로그로 퍼져나간다. 직접 만난 사람은 적은데 ‘아는’ 사람은 늘어간다.
문제는 우리가 터치감 나쁜 인간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데 있다. 인간의 터치감은 개선시킬 수도 없는데. 이미 세상에 나온 하드웨어는 제아무리 ‘어려 보이는’ 튜닝을 해도 결국 터치감이 떨어지고 정보처리능력이 떨어지는 운명에 순종하게 되어 있다. 윗사람 마음에 안 든다고 입맛에 맞는 신형으로 바꿀 수 없고, 옆자리 동료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업그레이드할 수 없다. 자꾸 기계가 편리해지니까 마음 편하게 잊어버리고야 마는 한 가지. 나 자신 또한 터치감 나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