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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영화] 영화와 실제 사이, 그 아슬아슬함이란…
김연수(작가) 2009-12-31

짐승의 경험을 했던 여성지 기자 시절을 떠올리며 <여배우들>을 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영화를 보다보면 아는 사람들이 자꾸 나온다. 그게 나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글쎄, 이십대에는 그런 일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에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석조건물 언저리에서 장준환과 뭔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엉거주춤하게 서서 우리는 각자 영화를 만들고 소설을 쓰자고 다짐했다. 그때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다짐만 하고 있었다. 몇년이 지나 준환이는 단편영화를 하나 만들었고 나는 장편소설을 한권 펴냈다. 하지만 비디오 가게에서 준환이의 단편영화가 실린 테이프를 빌려서 본 사람이나 내 장편소설을 다 읽은 사람은 너무나 드물었다. 모르긴 해도 그 두개를 모두 보고 읽은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나 혼자뿐일 것이라는 확신마저 들더라.

책을 펴낸 뒤, 제일 먼저 한국 출판계에, 그 다음으로 나 자신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뭔가를 열심히 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십대라는 나이에 실망하게 된 나는 미련없이 절필을 선언하고(그러거나 말거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잡지사에 취직했다. <워킹우먼>이란 제호의 라이선스 잡지였다. 면접에서 포부를 말해보라는 사장님의 질문에 모든 직장 여성들이 <워킹우먼>을 손에 들고 출퇴근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일하겠다고 또 다짐했지만, 내가 쓴 소설 한권도 그 손에 쥐어줄 능력이 없다는 건 분명했다.

영화 속 저 기자랑 같이 일했는데

약간 시큰둥하게, 하지만 자세히 보면 반쯤 얼이 나간 채로 잡지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고 몇달이 흘러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어느 밤. 시간이 없어서 저녁도 거른 채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가다가 나는 내가 짐승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심오한 사실을 깨달았다. 겁을 줄 생각이라면 으르렁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습적으로 찔렸다면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는 듯 웃으며 더 세게 상대방을 찌른다. 숨통을 끊어놓을 작정이라면 급소를 노려라. 하지만 마침내 마감이 끝났다는 소리가 들린다면, 조용히 그 자리에서 빠져나와 달리자. 뒤돌아보지 말고 달리자. 잠적은 이럴 때 하자, 우리. 일단 한번 짐승의 경험을 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 잡지사 기자 일은 좀 중독되는 측면이 있다.

<여배우들>을 보는데 여성지 기자로 일하던 그 시절의 일들이 떠올랐다. 피처 담당이었던 나는 주로 성공한 여성 CEO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들이 하는 말을 노트에 받아 적으면서 나는 좀 찔렸다. 그들은 한결같이 모든 직장 여성들이 <워킹우먼>을 손에 들고 출퇴근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비하면 모델들이 화보를 촬영하는 지하 스튜디오는 아프리카 들판처럼 보였다. 짐승이라면 마땅히 그런 들판에서 뛰어놀아야만 할 것 같았다. 해서 나는 패션 담당이 되고 싶었다. 다짐한 뒤에 진지하게 편집장에게 분야를 바꿔달라고 말했다. 편집장은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진짜 여성지 기자가 되고 싶다면 패션을 반드시 거쳐야만 해, 라고도 말했다. 그런데 그 머리는 어디서 잘랐냐?

그 시절에 내 옆에는 <여배우들>에 나오는 <보그>의 김지수씨가, 그 옆에는 <럭셔리>의 김은령씨가, 내 맞은편에는 <바자>의 김경씨가 앉아 있었다. 그 사람들과 같이 일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자랑스럽다. 그들은 정말 잡지사 기자들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짐승이 되는 게 잡지사 기자의 일이라면 말이다. 물면 웃는 표정으로 똑같이 물고, 뭐 그런 거 말이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는 꿋꿋하게 장충동 소재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았으니까, 내가 패션 기자가 된다는 건 모든 직장여성들이 내 소설을 읽으며 출퇴근하게 되는 일보다 더 어려웠다.

연기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내 인생에 한 30분 정도, 여성지의 편집장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지금의 내 나이쯤? 그런데 내게는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었다. 그때 내게는 리틀프린시즘이 있었다고나 할까. 편집장이 된 어린왕자(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를 상상해보라. 이렇게 말하겠지. “보이는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야.” 패션이란 중요한 걸 눈에 보이게 하는 일이니까, 이런 식의 태도로는 곤란하다. 영혼이 중요하다면, 패션 디자이너는 그걸 눈에 보이게 만들 것이다. 패션 에디터의 태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패션 디자이너, 패션 에디터, 패션 모델…. 그들에게도 내면은 존재하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반면에 배우란 어쩔 수 없이 내면이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분장실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이미지. 스스로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 그들의 내면이 분열되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여배우들>의 배경이 <보그>의 표지사진 촬영현장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패션업계는 패션모델의 내면을 사용하지 않지만(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사생활이라는 게 존재한다) 스타산업은 배우의 내면까지도 모두 계약조건에 넣어버린다. 그런데 ‘여배우들’에서 여배우들은 배우라기보다는 패션모델에 더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그 연기 이면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 각자 자신을 연기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보이지 않는 그 뭔가는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끝내 촬영장에 도착하지 않은 보석처럼.

최근에 나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다가 이런 문장에 줄을 그었다. “진리란 인식과 그 대상의 합치.” 아아아, 나의 공교육 12년과 대학교육 6년은 모두 이 문장 하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다녀야만 했던 것이다. <여배우들>의 진리 역시 영화가 인식하는 그들과 실제의 그들이 얼마나 합치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정말 아슬아슬한데, 이 아슬아슬함이 창작자에게는 참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크레딧의 공동각본 명단에 여배우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거 사실일까? 그럼 <무한도전>이나 <해피선데이-1박2일> 같은 리얼리티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은? 용산에서 울던 정운찬 총리는? 거기에도 무슨 내면이라는 게 있나? 아니면 허수아비 껍데기일 뿐인가? 아무튼 여배우들이라니까 기자 시절, 전도연씨와의 에피소드에 대해 좀 써보려고 했는데 분량이 다 차버렸네,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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