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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귀도를 중심으로 한 9개의 ‘쇼’ <나인>
이화정 2009-12-30

synopsis 유명세와 제작사의 무리한 요구 등으로 창작의 위기를 맞이한 영화감독 귀도(대니얼 데이 루이스). 아홉 번째 대작을 준비 중에 그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아무도 모르게 탈출해 휴양지로 직행한다. 물론 뜻대로 잠수타기가 성공할 리 없다. 제작사는 제작 사무실을 아예 휴양지로 옮겨와 귀도에게 연출을 종용한다. 혼란의 와중, 귀도의 정부인 칼라(페넬로페 크루즈)와 아내 루이사(마리온 코티아르)가 나타나 신경전을 펼친다. 이후 귀도는 보그 패션기자 스테파니(케이트 허드슨), 여배우 클라우디아(니콜 키드먼), 엄마(소피아 로렌) 등 여인들을 만나며 자신의 의식을 짓누르고 있는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롭 마셜 감독은 이미 <게이샤의 추억> 이후 다음 영화로 <나인>을 점찍고 있었다. 브로드웨이 안무가 출신의 감독에게 귀도의 판타지는 그만큼 강렬하고 매혹적인 소재였다. 귀도처럼 롭 마셜 감독의 머릿속도 복잡했다. 원전이 될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8과 1/2>처럼 난해해서도, 그렇다고 뮤지컬 <나인>의 특성만을 가져올 수도 없는 일이었다. 롭 마셜이 취한 가장 커다란 조치는 귀도의 역할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었다. SF영화를 만들려는 <8과 1/2>의 예술가 대신, 뮤지컬 버전의 카사노바 이야기를 차용했고 예술가의 복잡다단한 심경을 줄임으로써 영화의 심각성을 배제했다. 대신 그 자리에 귀도의 판타지를 현실화할 여성 캐릭터들의 비중을 한층 높였다.

<나인>은 그래서 마치 귀도를 중심으로 한 9개의 ‘쇼’처럼 전개된다. 요염한 정부 칼라가 펼치는 공연, 정숙한 아내 루이사가 부르는 회한의 노래, 그를 유혹하는 패션지 기자 스테파니의 농염한 쇼, 가장 완벽한 형태의 이상적인 여성으로 분한 여배우 클라우디아의 멋진 퇴장…. 화려한 치장의 여배우들은 각자 따로따로 가장 섹시한 포즈의 춤과 노래로 귀도를 흥분시키고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각자의 퍼포먼스로 본다면야 더할 나위 없는 볼거리지만, 영화적으로 캐릭터의 연결고리는 헐겁기만 하다. 그러니 제각각의 쇼가 지루함으로 연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결국, 중심축이지만 실질적으로 곁가지 역할에 한정되어버린 귀도가 가장 아쉽게 됐다. 단순화된 그의 고민 탓에 영화가 지극히 멜로드라마적인 결론으로 매듭된 셈이다.

뮤지컬은 <8과 1/2>을 <나인>이 되게 하려고 나머지 1/2을 ‘음악’으로 채웠다. 롭 마셜 감독이 택한 1/2은 펠리니의 원작과 뮤지컬의 장점을 버무린 스크린 위의 ‘마법’이었다.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충족시키려다보니 펠리니의 원작은 느슨해지고, 뮤지컬은 무난해져버렸다. 기대에는 못 미치는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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