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 대학에 ‘뱀파이어 강의’가 개설되면 어떨지 생각해보라. 소녀들이 빨간 립스틱으로 제 입에 핏자국을 그리고, <뉴문>이 박스오피스 이변을 일으키는 요즘 시대에 말이다. 아마 커피학이나 연애학 강의만큼 수강신청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UC샌타바버라대학에서 뱀피리즘(Vampirism)을 가르치는 로렌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필수적이거나 권장하는 읽기 과제에서조차 에둘러 쉬운 말로 바꾸어 전달하고 싶은 욕망에 굴복한 적이 결코 없다.” 그러니까 뱀파이어는 종류가 어떻게 되나요, 유명한 뱀파이어영화에는 어떤 작품이 있나요, 처럼 겉핥기식 질문이 궁금한 사람은 당장 수강철회 버튼을 누르라는 것.
<뱀파이어 강의>는 로렌스 A. 릭켈스 교수가 실제로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총 26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바탕으로 뱀피리즘의 길고도 깊은 역사를 파헤친다. 투사, 애도, 유추 등 정신분석학적 용어가 별도의 설명없이 문학·영화·역사적 사실과 교접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로만 폴란스키의 <하숙인>은 투사의 개념을 기념비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이며, 소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저자 앤 라이스가 죽은 딸 미셸에게 바치는 애도의 헌정이다. 학술적 용어에 알레르기가 있는 독자라면 중간에 책을 덮을 수도 있겠으나, 꾹 참고 끝까지 읽으면 뱀파이어에 대한 지식으로 머릿속이 든든해지는 느낌이다.